멀티포트가 함께라면 두렵지 않아.
맥주엔 라면이지.
by try everything Jan 20. 2023
우리 가족의 해외여행 준비물 목록 1호는 전기 멀티포트와 라면, 누룽지다. 요즘은 실리콘 재질로 주름까지 있어 작게 접어진다지만 몇 년 전에는 그런 게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튼튼하지만 융통성은 없어 보이는 스테인리스 멀티포트에 봉지라면을 꾸겨넣어 조금이라도 부피를 줄인다.
아이가 2,3살쯤 되던 해, 괌으로 여행을 갔다. 신혼부부 시절에는 각자 캐리어에 본인 짐만 챙기면 됐지만 이제는 아이 짐이 한가득이다. 한 사람은 유모차와 아이를, 다른 한 명은 대형 캐리어 한 개를 전담하기로 한다. 그 캐리어의 1/4은 기저귀가 차지하고, 열 날것을 대비한 비상약 한 보따리, 기내에서 칭얼대지 않도록 간식, 좋아하는 놀잇감까지 챙기고는 음식이 안 맞을까 누룽지를 챙겼다. 누룽지를 끓일 멀티포트도 함께. 그 이후로 그들은 준비물 1위를 수년간 지키고 있다.
이번 여행은 시댁과의 여행이니 끼니는 잘 챙겨야 해서 쓸 일이 없어 보이는 나의 여행메이트를 과감히 두고 왔다. 그러나 여행 이튿날부터 이 녀석의 부재가 크다. 야심한 밤, 팔팔 끓인 라면에 맥주 한 캔으로 여행의 풍미가 살아나야 하는 데 있는 거라곤 현지 과자와 망고다. 있는 사람이 더하다 하겠지만 한국인은 알지 않는가. 아무리 맛난 음식이 있어도 라면은 끝판왕인 것을.
게다가 피자, 햄버거를 안 좋아하는 딸은 리조트 레스토랑에서 먹고 싶은 게 없단다. 그럼 얼른 씻고 나가서 먹자니 수영을 더 하고 싶다며 누룽지를 찾는다.
"엄마. 그냥 누룽지 먹으면 안 돼?"
"이번에는 그거 안 챙겼어."
"아니, 그걸 왜 안 챙겼어.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러게 이 엄마도 후회 중이란다. 또 오랜만의 해외여행이라는 만능 핑계를 댄다. 오늘 저녁에는 시내에 있다는 롯데마트에 들러 아쉬운 대로 컵라면을 왕창 쓸어 오리라. 밤마다 라면이 먹고 싶은 촌스러운 여행자는 무거워도 멀티포트는 무조건 챙기겠다는 다짐을 하며 오늘 밤 라면에 맥주를 마실 생각을 하곤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여행 TIP.
멀티포트는 세제 일체형 수세미를 지퍼백에 작게 잘라가면 설거지가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