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해외여행 준비물 목록 1호는 전기 멀티포트와 라면, 누룽지다. 요즘은 실리콘 재질로 주름까지 있어 작게 접어진다지만 몇 년 전에는 그런 게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튼튼하지만 융통성은 없어 보이는 스테인리스 멀티포트에 봉지라면을 꾸겨넣어 조금이라도 부피를 줄인다.
출처: 네이버 전기 멀티포트 검색창
아이가 2,3살쯤 되던 해, 괌으로 여행을 갔다. 신혼부부 시절에는 각자 캐리어에 본인 짐만 챙기면 됐지만 이제는 아이 짐이 한가득이다. 한 사람은 유모차와 아이를, 다른 한 명은 대형 캐리어 한 개를 전담하기로 한다. 그 캐리어의 1/4은 기저귀가 차지하고, 열 날것을 대비한 비상약 한 보따리, 기내에서 칭얼대지 않도록 간식, 좋아하는 놀잇감까지 챙기고는 음식이 안 맞을까 누룽지를 챙겼다. 누룽지를 끓일 멀티포트도 함께. 그 이후로 그들은 준비물 1위를 수년간 지키고 있다.
이번 여행은 시댁과의 여행이니 끼니는 잘 챙겨야 해서 쓸 일이 없어 보이는 나의 여행메이트를 과감히 두고 왔다. 그러나 여행 이튿날부터 이 녀석의 부재가 크다. 야심한 밤, 팔팔 끓인 라면에 맥주 한 캔으로 여행의 풍미가 살아나야 하는 데 있는 거라곤 현지 과자와 망고다. 있는 사람이 더하다 하겠지만 한국인은 알지 않는가. 아무리 맛난 음식이 있어도 라면은 끝판왕인 것을.
게다가 피자, 햄버거를 안 좋아하는 딸은 리조트 레스토랑에서 먹고 싶은 게 없단다. 그럼 얼른 씻고 나가서 먹자니 수영을 더 하고 싶다며 누룽지를 찾는다.
"엄마. 그냥 누룽지 먹으면 안 돼?"
"이번에는 그거 안 챙겼어."
"아니, 그걸 왜 안 챙겼어.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러게 이 엄마도 후회 중이란다. 또 오랜만의 해외여행이라는 만능 핑계를 댄다.오늘 저녁에는 시내에 있다는 롯데마트에 들러 아쉬운 대로 컵라면을 왕창 쓸어 오리라. 밤마다 라면이 먹고 싶은 촌스러운 여행자는 무거워도 멀티포트는 무조건 챙기겠다는 다짐을 하며 오늘 밤 라면에 맥주를 마실 생각을 하곤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