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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Jan 31. 2023

이모님 납시오.

불 꺼진 주방에서 그녀 홀로 일하고 있다.

'윙, 윙, 쉬이익, 사사사삭'

역시 집안일은 고단하니 혼잣말도 좀 해가며 일하겠지. 그 소리가 욕을 하는 건 아닌 게 확실하다만 주방이 고요하다 보니 그녀가 일하는 소리는 제법 존재감을 드러낸다.

일주일 정도 지켜보니 마음에 100%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 마음 한편에선 지난번 이모님이 풍채도 좋고, 일도 더 싹싹하게 잘했는데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세상일이 다 그러하듯 원하는 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니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한다.

'이모님이 없는 것보단 있는게 낫지.'




테니스를 친지 한 3개월쯤 되었을까? 팔꿈치가 이상하게 콕 콕 쑤시더니 테니스 칠 때도 불편감이 있다. 테니스를 못 칠 정도는 아닌데 계속 신경이 쓰인다. 어느 날은 설거지를 하는데 갑자기 팔이 시큰하면서 힘이 빠지더니 접시가 손에서 미끄러진다. 일시적인 증상이라 생각하며 조심하긴 했는데 이쯤되니 큰 병으로 키우는 것 같아 병원에 가기로 한다.  

'테니스 치지 말라고 하면 어떡하지?'

테니스 못 칠까 봐 걱정되지만 몸 아픈 것도 걱정이니 서둘러 병원에 간다.

엑스레이도 찍고 팔도 이리저리 굽혔다 펴본다.




"엑스레이에서는 특이한 사항은 없어요. 요즘 뭐 팔을 무리하게 쓰신 적이 있으세요? 운동이라던지."

"무리하게 쓴 적은 없어요. (테니스를 치긴 하지만요)"


어리석은 테니스 새싹은 테니스 이야기가 나오면 치지 말라고 할까 봐 거짓말 대신 말을 아끼는 것을 선택했다. 일단 팔을 최대한 쓰지 말고, 염증약을 처방해 줄 테니 먹어보고 그래도 증상이 낫지 않으면 5일 후에 다시 오라고 한다.


진료실을 나오려다 궁금한 것을 묻는다.

"근데 보통 여기는 왜 아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골프 엘보라고 운동하다가 아픈 경우가 죠."

'골프라구요?'

테니스는 쳤지만 골프는 평생 쳐본 적도 없는데 골프 엘보라니요. 나 도대체 운동을 어떻게 한 거니?



집에 돌아와서는 남편에게

"의사 선생님이 설거지나 팔에 무리 가는 것 하지 말라더라."

설거지를 최대한 안 하고 싶어,라는 마음을 듬뿍 담아 말하지만 그는 대답이 없다. 역시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팔 수밖에.

"우리 식기세척기 살까?"

예전 집에는 12인용 식세기가 빌트인으로 설치되었는데 이사 온 집은 없다. 아쉽지만 3인 식구 설거지는 그냥저냥 할 만하다고 생각하여 참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절실히 필요하다.

테니스를 치려면 식세기가 필요하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눈 지(혼자만 말한 지) 약 6개월 만에 식세기 이모님이 드디어 우리 집에도 강림하셨다. 싱크대를 뚫고 뭘 만들고 복잡한 건 싫었던 나는 싱크대 위에 올릴 수 있는 6인용 식세기를 당근으로 구매했다. 예전 식세기에 비해 용량이 적어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매끼 돌리면 되니 우리 집에 온 그녀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바이다.



팔꿈치를 보호하기 위한 나만의 테니스 용품이다.

테니스 용품도 왔으니 테니스를 치고 싶다.

재미있는 운동을 찾았으니 부디 그 운동을 오래 즐기기 위해 건강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테니스 치고 골프엘보 걸린 이유를 알아냈다. 유전이다.

테니스 치고 골프 엘보 걸린 딸에게는 골프 치고 테니스 엘보 걸린 아빠가 있었으니, 청개구리 DNA를 가진 특이한 부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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