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하느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방법
천주교 신자가 아니다 보니 실제로 해보거나 보진 못했고, 가끔 TV나 영화에서 고해성사하는 장면을 접할 때가 있다. 어떤 방에 들어가서 작은 틈 사이로 신부님께 자신의 죄를 고하는 사람을 보곤 한다. 극 중에서는 보통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범죄나 살인 등의 큰 죄를 고백하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작은 죄를 짓고도 마음이 불편하여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환경보호를 위해 작은 힘을 보태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엄청나게 쓰레기를 생산하는 나를 보곤 한다. 그 엄청난 쓰레기는 바로 밀키트, 반찬, 배달음식으로 만들어진다. 앞서 내가 쓴 글에 나오는 사소한 절약 대신 방금 말한 3종 세트를 줄이면 더 효과가 크다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실천이 어렵다. 지구에 대한 고해성사를 시작해 본다.
1. 밀키트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비효율적이어서 밀키트를 자주 구매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식재료가 아닌 밀키트의 구매율이 높아졌다. 양파 1/4개, 팽이버섯 1/3 정도처럼 적은 양이 들어있는데 비싸다. 그 가격이면 양파, 팽이버섯도 통으로 살 수 도 있고, 더 푸짐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가격 경쟁력이 낮은 이 물건에는 메뉴에 딱 맞는 재료 준비, 손질, 세척의 단계를 건너뛴다는 커다란 장점이 있으니 조리만 하면 20-30분 안에는 요리가 완성된다. 퇴근해서 저녁을 차려야 하는 내게는 푸짐한 요리보다는 쉽고 빠르다는 장점이 가격을 커버하게 되었다. 때론 남는 식재료가 없으니 음식물쓰레기 처리 비용이 절감되기도 하다. 여전히 밀키트의 비율은 내가 손수 요리를 준비하는 것보다는 비율이 현저히 낮으나 한 달에 4-5개는 구입하는 것 같다. 밀키트는 단점이 한 개가 더 있으니, 포장재다. 간편한 조리를 모토로 하다 보니 재료마다 비닐로 밀봉하고, 그 모든 것을 또다시 봉지나 플라스틱에 담아서 판매를 한다. 튼튼하고 깨끗한 거대한 플라스틱을 볼 때마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깨끗이 씻어 분리수거를 잘하는 것으로 미안함을 달래곤 한다.
2. 반찬
밀키트와 함께 우리 집 식단을 책임져 주는 또 하나는 동네 반찬가게이다. 우리 집 기준 대부분의 식사는 메인메뉴와 국, 밥이지만 때론 밑반찬이라 불려지는 반찬이 필요하다. 주말에 멸치볶음, 진미채, 장조림처럼 보관기간이 긴 것은 떨어지지 않게 해 놓고, 계란은 끼니때마다 계란 프라이, 스크램블, 계란말이 등으로 해내면 되나 나물류와 나머지 반찬은 가게의 도움을 받고 있다. 요즘 '일타스캔들'에 나오는 국가대표 반찬가게처럼 최치열의 입맛도 살릴 정도의 맛있고 엄청 큰 반찬가게가 우리 동네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일회용 플라스틱에 정갈하게 담긴 반찬을 사 오고 반찬을 옮겨 담을 때마다 지구야 미안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음에는 미리 반찬 통을 가져가서 담아달라고 할까라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퇴근길을 위해 아침부터 반찬통을 챙겨서 출근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이미 담아 놓은 것을 덜어서 오면 어떤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3. 배달음식
가장 비중이 적은 부분이긴 하나 먹을 때는 행복, 정리할 때는 미안이다. 지구에게. 족발이나 보쌈 같은 음식을 주문하면 어쩜 이렇게 배달용기가 다채롭고 튼튼한지 한 번 쓰고 버리기 아까울 정도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일회용 수저, 포크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어플에 표시하는 것뿐이다. 요즘은 다회용기에 주문한 음식을 받을 수 있어서 가능하다면 이것도 하고 있긴 하지만 불가능한 곳이 많아 쉽지 않다.
위의 3가지는 내가 돈을 지불하고 편리함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편리함이 지구를 멍들게 하고 있겠지. 인간과 지구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래도 고해성사와 같은 자기 반성으로 개인 차원이 아닌 기업이 움직이는 경우가 있으니 다행이다. 빨대 없는 멸균우유를 출시하는가 하면, 플라스틱 캡이 사라진 햄, 용기에 담아주는 것이 아닌 소비자가 가져온 용기에 세제를 리필해 주는 제품, 종이 빨대를 사용하는 카페 등이 생기고 있다. 작아 보이는 개인의 노력이 모여 사회를 바꾸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 대신 목소리 높여주는 그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느끼곤 한다. '나부터 해야지'로 시작해서 '나만 한다고 되나'를 거쳐 다시 '나라도 해야지'로 되돌아오는 과정일지라도 그 끈을 놓지 않는다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
감당할 수 있는 불편함으로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초록초록 하기를, 미세먼지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뛰놀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