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들에게는 런닝맨이 아직도 최고인가 보다. 하긴 나도 학창 시절 무한도전에 그렇게 집착 아닌 집착을 했던 때도 있었는데, 여전히 주말 예능은 초등학생에게 인기 만점인 법이다. 어느새 식탁 정리를 하고 딸 옆에 앉아 텔레비전으로 빠져든다. 그러다 송지효의 "젊은이"라는 발언에 내 귀가 반응하는 순간 TV 속 멤버들도 '젊은이' 발언에 한바탕 놀림과 웃음으로 시간을 채운다.
젊은이: 1. 나이가 젊은 사람 2. 혈기가 왕성한 사람
'송지효도 나이를 먹긴 했나 보다. 그녀의 입에서 '젊은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40살 전후가 되니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안 쓰던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젊은이'라는 단어였다.
"오늘 젊은이 같다."
"젊은이들은 이런데 오나 봐."
"요즘 젊은이들은 어디에 자주 가나?"
전래동화 속 단어 같기도 하고, 뭔가 익숙지 않은 이 단어를 어느 순간부터 쓰게 된 것이 내가 나이 들었음을 느끼게 하는 지표 같았다. 말하거나 들으면서도 이질적이지만 20대의 청춘을 '젊은이'라는 단어 아니고서는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한 40대인 나와 TV 속 그들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쇼핑몰이나 상가 중간에 '인생네컷'과 같은 사진 찍는 곳이 많이 생겼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인지 다시 돌아온 풍경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예전 스티커 사진은 크기는 더 작았으며 거기에 그림이나 글씨까지 깨알같이 채워 넣곤 했는데 요즘은 사진만 담기니 담백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유행에 맞춰 초등학생인 딸도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면 필수 코스로 사진을 찍는다. 4천 원의 행복이다. 최근 이 맛에 나도 빠지게 되었다.
근래 들어 조금 시간적인 여유가 있기도 했고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위로해 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자 친구들을 만났다. 경기도, 인천 각기 다른 지역에서 사는 친구들이라 지하철로 이동이 편하거나 광역 버스로 한 번에 올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보통 광화문, 강남역이 되곤 한다. 코로나와 육아 등으로 오랜만에 나온 서울 도심지를 갓 상경한 사람들처럼 두리번 거린다. 아니다. 아무리 서울에 처음 왔어도 우리보다 더 두리번 댈 수는 없는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은 방탈출 많이 하나보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좋은 데를 다 알지? 젊은이 타령을 하며 거리를 지나는데 사진관이 보인다.
"우리도 한번 찍어볼까?"
"오, 나 한 번도 안 찍어 봤어."
"난 몇 번 찍어봤지."
딸아이와 몇 번 찍어본 게 다인데 의기양양하게 친구들을 잡아끌었다. 쭈뼛쭈뼛 들어갔지만 왕년 스티커 사진 찍던 실력이 나온다. 가발, 모자, 안경, 꾸밀 액세서리를 썼다 벗었다 하며 거울을 떠나지 못한다. 우리 동네는 없던 고데기가 서울에는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역시 서울이라며 흥분한다. 이 와중에 퍼스널컬러를 고려하며 진지하게 선글라스 색깔을 고른다.
"보라색이 날까? 주황색이 날까?"
"주황!"
"그치, 난 정했다."
1+1만 누르다가 3장을 출력해야 하느라 고생 좀 했지만 40대 아줌마들은 이것도 즐겁다. 인생네컷 찍는 젊은이가 된 것 같아 기쁘다. 집에 가서 아들, 딸들에게 보여줄 생각을 하니 괜히 부끄럽기도 하고 재미있다.
100세까지는 자신이 없고 80세가 기대수명이라 한다면 절반 정도 지나온 지금,
마음은 아직 20대인데 나이는 40대로 접어드는 요즘,
20대의 청춘들을 '젊은이'라고 부르는 지금,
생애전환기라고 건강검진도 달라진 요즘,
나이먹음이 더 와닿고 있다.
하지만, 10년 후에 지금을 바라보면 우리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고, 시작하기에도 딱 좋은 '젊은이'일 것이다. 50대, 60대도 그러하겠지. 죽기 전보다 어쨌든 한 살이라도 젊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