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가거나 장을 보러 갈 때 지나가는 쇼핑몰이 있다. 그곳 1층에는 인생네컷이 있는데 딸아이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가 보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엄마, 아빠. 우리 같이 사진 찍으면 안 돼?"라며 아쉬움 섞인 말을 내뱉는다. 그럴 때마다 오늘은 모자를 썼다느니, 화장을 안 했다느니, 멋진 옷을 안 입고 왔다며 철벽을 쳤다. 돈을 들여 사진을 찍는데 모름지기 평소보다 예쁘게 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이젠 사진을 찍어도 마음에 들지 않는 때가 많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눌린 머리는 캐릭터 모자를 쓰거나 민낯은 선글라스로, 후줄근한 옷은 화려한 소품으로 가릴 수도 있다. 그리고 늙어 보이는 얼굴도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인데 피하기만 했던 것이 다소 민망하기도 하다.
그러다 딱 1년 전 오늘, 예쁜 옷을 입고 화장도 한 뒤 가족 모두가 인생네컷으로 들어갔다. 마침 차려입은 김에 핑계 댈 수도 없어 마지못해 들어갔던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찍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공휴일을 맞이하여 데이트하던 커플들과 마지막 방학을 즐기는 학생들 사이에서 쭈뼛쭈뼛하던 기억이 있다. 아마 딸아이가 없었다면 바로 나와 버렸으리라. 10분을 넘게 기다리니 한 곳의 커튼이 젖혀지면서 아이들 5명이 나왔다. 양손 가득 외투와 소품을 챙겨 나오던 그들은 사진 찍는 것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볼이 빨갛게 상기되고 땀까지 흘리기도 하였다. 그들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까르르 웃는다.
이제 우리 차례다. 경험자인 딸 덕분에 생각보다 수월하게 시작하였다. 찍다 보니 몸이 풀리는지 표정도 몸짓도 자연스러워질 때쯤 8장의 사진 찍기가 순식간에 끝났다.
어? 하며 허둥지둥하다가 어! 하며 끝나버렸다.
온갖 핑계로 사진 안 찍는다고 버틴 것도 잊은 채 나도 모르게
"우리 가족끼리 매년 3월 1일 날 이렇게 사진 찍을까? 개학 전날 기념도 되고."
라고 했는데 벌써 1년이 되었다.
어제부터 들뜬 딸아이와 다르게 우리 부부는 오늘따라 날씨도 을씨년스러운 것이 나가기도 귀찮고 마지막 휴일을 오롯이 편하게 지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내일 학교 다녀와서 찍자고 튕겨본다. 하지만 1년을 기다린 딸은 예외가 없다. 인생네컷에다가 오늘 개봉한다는 "멍뭉이" 영화까지 코스로 짜놓아서 안된다는 것이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는 딸에게 대신에 영화 개봉하는 날 꼭 보자고 했는데 그것도 오늘이라니.
'난 내일을 위해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해야 한단 말이다.'
약속도 했고, 영화에 우리 가족 최애 강아지 레트리버도 나온다니 움직일 수밖에 없다. 올 때 장도 볼 요량으로 주섬주섬 장바구니까지 챙겨 집을 나섰다. 결론은 나오길 잘했다이다. 영화 보는 목적이 강아지 보는 것이었으니 다양한 개들을 볼 수 있어 만족했고, 반려견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해 볼 수 있어 좋았다. 마지막 코스인 인생네컷을 찍으며 우리 가족만의 개학 전 루틴이 생긴 것 같았다. 작년 한 번으로 그쳤다면 이벤트였겠지만 올해로 두 번째가 되니 내년까지 달성하면 나름 어엿한 우리 가족의 연례행사로 굳어질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꾸미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촌스러운 생각을 탈피하고 트레이닝복을 입고 찍었으니 사진에 대한 부담감도 덜었다. 우왕좌왕했지만 이 상황이 즐거웠던 우리는 사진 찍는 1분여 동안 많이 웃었다. 작년 그때처럼.
오늘의 가족 행사 기념품인 사진은 딸아이의 책상에 붙여졌다. 거실 소파 위에 걸리는 커다란 가족사진 대신에 비닐에 끼워진 손바닥만 한 사진이지만 보고 있자니 찍던 순간이 머릿속에서 동영상처럼 재생된다. 아이는 숙제를 하다가도, 놀이를 하다가도 힐끗 그 사진을 보겠지. 그리고 그 순간을 행복으로 기억하겠지.
인생네컷이 사라질지, 엄마 아빠랑 사진 찍자고 하던 딸이 커서 그만하자고 할지 모르겠지만 오래도록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