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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학부모회

엄마와 교사, 그 어중간한 사이에서.

by try everything

개학한 지 1주일이 지나고 있다. 학급의 규칙이나 수업 방식, 학교 생활에 대한 안내도 어느 정도 끝났다. 아이들에게 이름을 외우는데 2주 정도 걸릴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이미 아이들의 이름도 다 외웠다. 다만, 마스크를 쓰고 있는 아이들은 그 모습으로만 기억할 수 있다. 나는 마스크를 벗고 생활하지만 거의 모든 학생이 마스크를 쓰고 생활을 한다. 그들이 마스크를 벗는 순간 새로운 학생을 맞이한 것처럼 다시 얼굴을 익혀야 할지도 모른다.


이제 개학 2주 차에 접어들며 시작하는 일이 있으니 각종 학부모회 조직이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보통 3주 차에 하는 학부모 총회에서는 학부모 대표와 이때부터 모집했지만 신청이 저조한 다른 학부모회 가입까지 독려해야 한다. 1년 학급살이를 소개하는 날이 가입 의사가 없는 이의 굳건한 마음을 두드려 기어이 가입 신청서를 받아내야 하는 날이 된 지 오래다. 자녀의 담임과 학급에 대해 설명을 듣고자 모인 학부모의 마음도 가벼울리는 없다.


올해 우리 학교는 녹색 학부모회 방침이 바뀌어 1 가구 1 봉사로 바뀌었다. 작년까지는 '희망인 듯 희망 아닌' 희망자의 신청으로 이루어졌는데 모집이 쉽지 않으니 의무로 바뀌었다. 각 학급에 할당된 인원이 채워지지 않은 경우에 담임교사는 몇 번의 알림장, 안내장을 보낸다. 빠르게 신청자 모집이 끝난 교사는 한시름을 놓고, 아직 채우지 못한 교사는 가까스로 여유가 생긴 동료교사를 부러워하며 전전긍긍이다.



"못 채우면 그냥 저라도 한다고 하면 안 될까요?"

신규교사가 자포자기하며 묻는다.

"교실 지켜야지. 자리 비운 사이에 교실에서 사고 나면 어쩌려고, 큰 일 나."



이러다 보니 의무 봉사로 전환한 학교가 많다. 우리 학교는 내년 전면 의무봉사 되기 전 유예기간처럼 부득이한 경우에는 체크해서 신청서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절반 가까이 부득이한 경우에 체크를 하니 작년과 다를 바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연유로 여러 사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봉사를 수락한 학부모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이 생긴다. 나 또한 학교 밖에서는 학부모이기에 1년에 단 한 번인 그날을 위하여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딸이 다니는 학교는 1년 1회 의무 녹색활동이다. 공지된 날짜를 한 달 전부터 별표까지 쳐서 핸드폰 스케줄 표에 입력해 놓았다. 가장 바쁜 3월이라 걱정도 되었지만 고학년이다 보니 교과전담시간이 있어 조정하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즉, 가능하긴 하나 사전 준비가 많이 필요했다. 일단 일주일 전에 교장, 교감 선생님께 1시간의 지각이라 불리는 지참을 달기 위해 사전 승인을 받아야 했다. 승인이 나지 않으면 방도가 없다. 다행히 허가가 나면 교과 선생님과 동학년 선생님께 시간을 조절하여 양해를 구하고, 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다음 날 오전 아침활동 시간 20분 동안 선생님이 없으니 평소보다 조용히 할 일을 해줄 것을 당부하고, 그 시간에 나 대신 교실을 봐주실 전담 선생님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시간을 우리 반에 할애해 주실 수 있는 분을 말이다. 그럼에도 마음이 안 놓여서 활동지를 준비해 두고, 옆 반 선생님께도 혹시나 모르니 살펴봐달라 부탁을 해놓는다. 20여 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이 있는 교실을 비운 적은 부모님 상과 자녀 녹색 활동에 해당하는 1시간뿐 밖에 없지만 괜히 눈치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아이의 입학도 지방에 계시는 할아버지가 대신 가주셨다. 괜히 심술이 나서 대상도 없는 이에게 짜증이 난다. 아니, 그 대상은 사회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휴직할 수 없는 나를 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러니 저출산이 당연하지.'


정책이 많이 생겼지만 아직도 사회는 엄마들에게, 학부모에게 많은 것을 바란다. 일도 해야 하고 엄마 노릇도 해야 하니 마음이 뾰족해지기도 하고 깨지기도 한다. 1년에 몇 번 없는 날 때문에 퇴사를 할 수 없지만 만약 아이가 병치레가 잦거나 돌봄이 더 필요한 경우가 되면 그때는 더 이상 방도가 없다며 엄마 선언을 하며 일을 놓게 된다.





자녀의 녹색 봉사를 하고 녹색 깃발을 놓자마자 출근을 하고 학생들에게 늦은 인사까지 하고 보니 아침부터 진이 빠진다. 컴퓨터에서는 녹색 학부모회 신청자 명단을 월요일까지 취합해 달라는 알림이 왔다. 아직도 안 걷힌 신청서가 많아 알림장에 미리 적어둔다. 아이들에게는 엄마든 아빠든 고모든 삼촌이든 다 가능하니 되도록 우리 학교 학생들의 등굣길 안전을 위해서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말해놓는다. 다 이해가 되니 더 어렵다. 엄마로서 이해가 되지만 교사로서도 어쩔 수 없다.


녹색 봉사해 주시는 모든 학부모님 감사합니다.
1번의 봉사지만 우리의 노력이 합쳐져서 내 자녀를 포함한 모든 아이들을 지켜주시고 계시거든요.
감사합니다. 진심입니다. ♡


엄마와 교사, 그 중간 어디쯤에선가 고군분투하는 나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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