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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물딱진 박똥글 Dec 14. 2021

ENFP가 ISFJ와 소개팅하면 일어나는 일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던데요

* 각 유형을 대표하는 글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마지막 연애가 언제였더라.. 가물가물해질 무렵 소개팅 제안을 받게 되었다. 나를 너무너무 잘 아는 언니였기에 '너는 너의 반대 성향과 만나야 서로 보완이 된다'며 정말 다른 성향의 친구를 소개해주었다.


 내 이상형이 대체로 조용하고 신중하고 이성적인 스타일로, 나랑 반대의 성향을 좋아한다. 나는 늘 감정이 앞서고 충동적인 결정을 해서 후회할 때가 많은데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계획적으로 일처리 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대체로 사람한테 반하는 포인트다.)


 소개남은 일에 있어서 자신만의 비전을 갖고 열심히 사는 청년이었고, 굉장히 신중한 성격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1살 연하였는데 첫 번째 만남 때 느낌이 괜찮았다. 그래서 헤어지면서 물었다. 

'다음번엔 언제 만나나요?'ㅋㅋㅋ


 이번에 알게 된 건데 나는 금사빠에 마음에 들면 직진하는 스타일이었다. 바로 두 번째 만남을 잡았고 대화도 잘하고 잘 만났다. 앞서 말한 금사빠 직진 스타일로, 2번째도 괜찮았으면 됐다 하면서 내가 먼저 선톡 하면서 2시간이고 3시간이고 답장을 기다렸었다. 근데 그분은 본인 일이 너무너무 바쁘신 분이어서 연락이 전혀 안 되었다. 그래서 나는 주선자 언니에게 이 친구가 너무 연락이 안되고 어쩌고~ 얘기했다. 주선자 언니와 그 소개남의 성향이 너무 같아서 언니가 그분의 상황을 너무 찰떡같이 대변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느낌도 나쁘지 않았고 이상형이랑도 가까웠기 때문에 3번까지는 만나보자 결심을 하고 만났다.


 3번째 만남 때는 직접 연락 부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하고 앞으로도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물어봤다. 너무 신중에 신중한 성격이시라.. 그분 역시 본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연락 부분에서도 신중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조금 더 만나야 사람을 알 수 있지 않냐고 했다. 그래서 오케이 몇 번을 생각하냐고 했는데 10번이랬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냐고 거기에서 빠이 했어야했다.

나는 신중한 사람이면 다 그런 줄 알았지!!


 10번 오케이였고 연락 부분은 서로 얘기한 게 있어서 시간을 정해서 카톡을 했었는데 그땐 진짜 이미 사귀는 것처럼 엄청 친밀해져서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밥만 먹고 헤어진 날 1번(바쁘셔서^^;), 잠깐 산책하며 대화 나눈 날 1번(이 또한 바쁘셔서^^;)

 이렇게 의미 없는 횟수만을 채워가며 약 1달 반을 보냈다.


 그 10번의 횟수를 채워나가는 중에 주변에 친구들은 소개팅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냐고 물었다. 그리곤 근황을 듣고 만류했다. 그게 뭐 하는 거냐며 그 정도면 마음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톡이나 통화를 할 때면 정말 사귀는 것처럼 행동했고 나는 그 마음을 믿었다.


 대망의 10번째 만남 때 결판을 내야겠다고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그분은 나랑 카톡을 하면서 대화를 할 때는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안 맞을 것 같다고 마지막으로 1주일 동안 연락을 안 하고 더욱 신중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개소리를 해댔다.

 나는 너무 황당하고 실망한 채로 그렇게 헤어지고 집에 돌아왔는데, 생각할수록 너무 열 받았다.

이 정도면 가지고 논거 아닌가?


 그래서 전화로 왜 그렇게 당장 결혼할 것도 아닌데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그동안 그건 뭐냐며 와다다 따지고 나서 주선자 언니한테도 욕을 한 바가지를 해주었다.

  



 이 이후 '신중'에 진절머리가 나버렸다. 관계에 있어서 특히 연애에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는 것은 나도 사람 만나는 것에 꽤나 진지한 편이어서 이해를 한다. 하지만 신중이라는 것은 회피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결정할 수 없어 회피하고 미루는 것은 신중이 아니다. 특히 그건 배려가 없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그 이후 너무 밉고 화가 나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혼자서 욕을 마구마구 해대기도 했다.


사랑의 감정에도 시차가 있다. 감정이 빠르게 익는 금사빠가 있는 반면, '사랑'이라는 말에 걸맞을 만큼 달궈질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도 탄생했겠지. 여기서 후회는 언제나 느린 사람의 몫이다. 이제 막 상대를 파악하고 감정에 적응될 때쯤 상대의 마음은 떠나버리고, 그때부터 아무리 잰걸음으로 달려봤자 상대는 증발한 듯이 거기 없다. 그렇다고 억지로 인정되지 않는 감정을 사랑이라 우기며 성급한 관계를 시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시차가 맞는 사람끼리 만나는 것 또한 사랑의 기적 중 하나다.

-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中


 고작 소개팅 하나로 별걸..

 그래도 이번에 많이 깨닫게 되었다. 만약에 그 사람의 속도에 맞춘다고 20번이고 30번이고 기다렸다면 나의 마음은 너덜너덜 해졌겠지. 각자마다의 속도가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 하나만 노력한다고 해서 관계는 결코 발전될 수 없다는 것도.

 

 주선자 언니도 그 소개남의 모습에서 자신의 지난 과오를 보았다며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달았다고 했다.(언니도 소개팅 때 10번 만남을 제안했던 적이 있다.) 그래.. 되었다. 언니도 나도 그냥 깨달았으면 된 거야.. ㅎㅎ

 아직까지도 가끔 생각나서 열 받으면 그렇게 신중하다가 평생 혼자 늙어가라며 악담을 퍼붓기도 한다.

 

 근데 열 받는 와중에 금사빠에 열심히 직진했던 것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감정에 솔직하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감정이 상대에게 강요가 돼서는 안 되겠지만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멋있는 행동이다. 나는 상처를 받더라도 또 그렇게 불나방처럼 달려들겠지만 기꺼이!그렇게 할 것이다.


출처: jtvc ‘또! 오해영’

(그래서 지질할지라도 감정에 아주 솔직했던 극 중 오해영이라는 캐릭터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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