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너는 꿈이 뭐야?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나는 꽤 오랜 시간 이 질문에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말을 꾸준히 해왔다. 단순한 동경이었을까. 초등학생 때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중학생 때는 중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 체육을 좋아하게 되면서부터는 체육 선생님을 꿈꿨다. 그 나이대 가장 자주 마주치는 멋진 어른이 선생님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다시 그때의 이유를 떠올리라고 한다면 예전처럼 술술 답하진 못하겠지만, 내 인생의 절반 정도는 장래희망 란에 '선생님' 세 글자를 적어내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자라나며 교사가 되는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여러 현실적인 이유들로 나는 오랫동안 품어온 그 첫 꿈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당연하듯 직업을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정답이라 믿었다. 아마 많은 사람이 나처럼 생각할 것이다. 그랬기에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포기했을 때 나는 그와 비슷한 길은 아예 찾을 수도,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라 단정 지었다. 하지만 이는 크나큰 오산이었다. 만약 그때의 오만한 편견에 계속 갇혀 있었다면, 나는 아마 지금 누리고 있는 새로운 인생을 결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 입학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반수 끝에 가장 가고 싶었던 대학교에 최초 합격한 뒤 기분 좋은 무료함을 즐기고 있었다. 성인이 되면 어른들 없이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일들을 마음껏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하필 찾아온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계획은 잠시 뒤로 밀려나 있었다. 남들 다 하는 자격증이나 영어 공부 말고 뭔가 색다른 건 없을까. 그러던 중 '대외활동'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대학 입시를 위해 학교 안의 활동에만 집중했던 내게는 너무나 생소한 단어였다.
그 세계는 굉장했다. 연합동아리부터 공모전까지,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수많은 활동을 구경하며 나는 내가 흥미를 느끼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가 확고하게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르듯 누군가는 내가 무관심한 분야에 열광하며 모여들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살피던 와중, 나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문구가 있었다. 바로 '대학생 멘토단'이었다.
대학생이 되면 해보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과외나 학원 아르바이트였다. 같은 내용이라도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 흥미의 깊이와 달라지는 것을 직접 경험하며,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학교, 학원, 과외, 인터넷 강의에 이르기까지 내가 만난 수많은 선생님이 떠올랐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의문이 있었다. '내가 과연 누군가에게 공부를 가르칠 자격이 있을까?'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상대의 고민에 공감하고 명쾌한 해결책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부에 있어서는 해결책보다 공감밖에 해줄 수 없는 나였기에 고민은 깊어졌다. 그런 내가 비교적 명확하게 답해줄 수 있는 분야가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진로'였다.
사실 나의 진로 또한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앞서 나가는 고민과 걱정 탓에 부모님께 상담을 청하면 "걱정을 사서 한다", "그 시간에 공부나 해라"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붙잡고 매일을 끙끙 앓았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른 뒤 이 과정을 '어렵지 않았다' 혹은 '후련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겪어온 과정과 결과에 만족하며 후회가 남지 않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나는 공부를 아주 잘했거나 단 한 번도 졸지 않았던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내가 하고 싶은 꿈을 꾸준히 찾아 키워왔다고.
물론 내가 진로 고민을 가진 이들에게 완벽한 해결책을 내려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진로는 공부보다 더욱 정답이 없는 영역이지 않은가. 정해진 답이 있는 객관식 시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내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활동들에 직접 도전하며 꿈을 키웠고, 그 경험과 추억으로 선택한 지금 순간에 단 한 점의 후회도 없다는 점이다.
내가 마주하게 된 '대학생 멘토단'은 성적이나 시험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었다. 진로로 고민하는 학생들의 편에 서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멘토단이었다. 이런 곳이라면,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고민을 겪고 나름의 방식대로 잘 이겨낸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겁 많고 걱정 많은 내가 무슨 자신감이 있어서 발을 내디뎠을까. 그리고 이 선택은 나의 인생을 또 한 번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