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내야 비로소 들리는 것들

1장

by 지우

첫 멘토링을 나가기 전, 내용을 준비하던 시간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 그때 기획했던 초안,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대본, 그리고 처음 완성했던 PPT 강의자료 슬라이드까지. 돌이켜보면 참 많은 것이 변했지만,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하는 멘트들이 꽤 많다. 중간에 뺐다가 다시 넣게 된 문장들도 있다. 수년 전 가졌던 그 초심이 여전히 내 안에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멘토링과 비슷한 강연이나 수업 등을 시작하는 많은 사람이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고민은 아마도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일 것이다. 호기롭게 멘토단에 지원하고 발표용 PPT 강의자료를 만들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정작 하얀 화면을 마주하면 무엇부터 채워야 할지 막막함이 앞섰다. 하지만 내게는 막막함 이전에 해결해야 할 다른 단계가 하나 더 있었다.


나는 오히려 처음부터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반수를 거쳐 간절했던 대입에 성공한 직후였기에 입시와 진로에 대해 해 줄 말이 산더미 같았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성격과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아낌없이 조언해주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 때도 마냥 어린 나이였는데, 이제 막 고등학생 시절을 졸업하며 나름대로 인생의 큰 숙제들을 해결했다는 자신감이 넘쳤던 때라 그랬을 것이다.


일단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두서없이 줄줄이 적어 내려갔다. 정보량으로만 따지면 꽤 풍성한 구성이 차려졌다. 하지만 완성된 초안을 다시 훑어보니 치명적인 문제가 보였다. 스토리 전개는 뚝뚝 끊겼고, 내가 읽어봐도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이건 멘토링이라기보다는 지루하고 딱딱한 훈화 말씀이나 강연 연설문에 가까웠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으면, 정작 상대에게 꼭 전달되어야 할 한 마디가 힘을 잃는다는 것을. 줄이자. 더 줄여야 한다. 정말 하고 싶은 말 한마디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덜어내기로 했다.



그런데 욕심을 다 비워내고 나니, 이번에는 남들과 똑같은 고민이 시작됐다. 정말 핵심만 남기고 나니 뻥뻥 뚫린 나머지 부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해졌다. 그때 나를 구원해 준 생각의 전환은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듣는 학생이라면 어떨까?"


말하는 사람의 자리에서 내려와 듣는 사람의 책상에 앉아 보았다. 그러자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전개 과정 중에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부분들이 무엇인지, 반대로 말하는 내 입장에서는 중요하다고 믿었지만 듣는 학생들에겐 전혀 필요하지 않은 군더더기는 무엇인지.


그렇게 나는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부분들을 과감히 지워나갔다. 대신 그 빈자리를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질문과 공감으로 채웠다. 지워진 내용들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 한 편에 잘 갈무리해 두었다가, 현장에서 시간이 남거나 구체적인 질문이 들어올 때 융통성 있게 꺼내 쓰는 카드로 활용하기로 했다.


준비한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나자, 오히려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멘토링은 내 지식을 자랑하는 무대가 아니라, 학생들의 마음속에 작은 울림 하나를 남기는 과정이라는 것을 나는 그렇게 배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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