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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성 Nov 15. 2023

롤러코스터를 타고 암이 나를 찾아왔다

인생은 '새옹지마' (프롤로그)





 2022년 9월 24일은 인생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가족들과 유럽여행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유럽 여행은 부자들만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었습니다.



 3900만 원 7평 전셋집에서 신혼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신발 1년 치를 한꺼번에 중고로 구입하여 신겼던 아줌마였습니다. 5켤레를 38000원에 구입을 하면 운동화부터 짝퉁 크록스까지 모두 다 들어있었습니다. 그렇게 큰 아이가 신발을 신고 나면 그 신발을 작은 아이가 또 신었습니다. 38000원에 두 아이 신발 1년 치를 해결했던 조금은 악착같은 아줌마였습니다.


 500원, 1000원 때문에 마트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던 아줌마였습니다. 아꼈던 이야기는 1박 2일을 해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나름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랬던 아줌마가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습니다.



 

 명품을 가지고 있지 않는 저를 신랑은 항상 안타까워했습니다. 디자인만 고르면 사주겠다고 몇 년째 말을 했지만 제가 사지 않았었습니다. 머.. 그다지 필요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돈도 써본 사람이 쓴다고 명품을 구입하는 돈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파리에서는 벼르고 벼른 신랑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참았던 저의 욕망이 터진 것 같기도 합니다. 샤넬과 고야드에서 가방을 구입하고 막스마라 코트도 구입했습니다. 버버리 패딩과 재킷도 구입을 했습니다. 파리에서는 더 이상 500원을 따지던 아줌마가 아니었습니다.

 

 제 물건을 사며 더 기뻐하는 신랑을 보며 저 또한 행복했습니다. 10년 넘게 고생한 저에게 이 정도 선물은 해도 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게 파리에서 생전 안 하던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유럽 여행은 아이들 기억에도 많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둘째는 스위스에서 탔던 패러글라이딩을 가끔씩 이야기합니다. 최고로 행복했다고 이야기하는 아들을 볼 때마다 여행을 참 잘 다녀왔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꿈같은 유럽여행을 떠난지 보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2022년 10월 9일 입국을 했습니다.

 


2022년 10월 밀라노 두오모에서



 입국 다음날인 10월 10일은 분당 서울대병원에 가야 했습니다. 유방암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그리고..  너무 쉽게 유방암 통보를 받았습니다.



 유방암 조직 검사를 하고 여행을 갔지만 '설마~ 암에 걸리겠어?'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왜냐하면 1년 전에도 유방 수술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운이 좋게 암 전단계로 나왔고, 그 후에도 꾸준히 정기 검진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년 만에 암 전단계도 아닌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조금 더 빨리 검진을 했어야 했습니다. 너무 늦게 발견을 한 의사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여행의 여운이 아직 가득 차 있는데 갑자기 유방암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병원 로비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누구에게 먼저 연락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습니다.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야 하나? 신랑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야 하나?...


 그렇게 앉아 있다가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났습니다. 너무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저에게 너무했습니다. 진짜 열심히 살았습니다. 악착 같이 두 아들을 키우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좀 보상을 받아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암을 주었습니다. 이건 너무한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이 너무 약속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추억이 가득 찬 여행 가방이 그대로 있습니다. 불과 어제만 해도 꿈같은 날을 보냈는데 오늘은 엄청난 공포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은 정말 맞는 말입니다. 그래도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입니다.



 명품 백들과 고가의 화장품을 정리하며 다 부질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죽을 때가 되면 안 하던 짓을 한다던데.. 내가 안 하던 짓을 한 것이 혹시?..’ 자꾸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암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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