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지만 무섭지 않은..
조직검사가 암으로 나왔으므로 여러 가지 추가 검사를 해야 했습니다. 전이가 되었는지가 관건이었습니다. 추가로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약 한 달간은 하루하루가 정말 피가 말랐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생각이 예고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곤 했습니다.
마흔두 살이었습니다. 물론 내가 죽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먼 훗날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살아온 세월만큼은 더 살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빨리 '죽음'을 생각하게 될지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불쑥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생각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신랑과 행복한 드라이브를 할 때도, 재밌는 유튜브를 볼 때도, 산책을 할 때도 ‘죽음’의 공포가 찾아왔습니다. ‘죽음’은 봐주는 적이 없습니다. 행복하거나 기쁜 순간에 어김없이 찾아와 행복과 기쁨의 순간을 순식간에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우울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찾아올 때마다 머리를 흔들고 좋은 생각을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곧 또다시 우울해졌습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나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신랑은 제가 이런 생각을 하며 지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한 번도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암 환자에게 ‘죽음’이라는 단어는 절대 해서는 안될 금지어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단어였습니다. 저조차 너무 무서워 꺼낼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이 들 무렵에 찾아오는 ‘죽음’의 공포는 뼈가시리는 외로움이었습니다. 신랑이 옆에 누워 있었음에도 너무나 외로웠습니다. ‘죽음’은 아무도 없는 외딴섬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섬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무서움을 오롯이 혼자 견디어야 했습니다. 외로움도 공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때 처음 알았습니다.
신랑에게 안아달라고 했습니다. 유튜브를 보던 신랑이 나를 꼭 안아줍니다. 신랑이 뒤에서 꼭 안아줘도 뼈가 시린 외로움이 가시지 않습니다. 그렇게 여러 날 밤을 신랑 품에서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혹시 내가 죽을까?’
‘내가 죽는다면 우리 아이들과 신랑은 어떻게 살지?’
‘나는 그동안 잘 살았나?’
‘왜 하필 지금이지? 왜 나지?..’
‘왜… 나지?....’
누구나 그렇듯 처음엔 억울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나쁜 사람 많은데 왜 암이 나에게 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곧 저의 생떼임을 알았습니다. 암은 나쁜 사람에게만 골라서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암은 사람을 가려서 찾아가지 않습니다. 다만 건강을 잘 돌보지 않는 사람에게 찾아갈 확률이 높을 뿐이었습니다.
수긍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동안 건강을 챙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두 다 내 잘못이었습니다. 그렇게 원망에서 자책으로 순식간에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운동을 했어야 했습니다. 잘 먹었어야 했습니다. 조금 더 나를 사랑하며 살았어야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나를 사랑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원망을 멈추자 공포도 조금씩 작아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지만 어느 순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작아졌습니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였는지, 지금 죽어도 나쁘게 산 삶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죽으면 편하지 않을까?라는 이상한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삶이 고되었다는 증거인건지 나름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인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나 잘 살았나?’에 대한 나의 대답은 ‘그럭저럭 잘 살았다.’ 였습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잘 살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20대의 저보다 40대인 제가 더 좋습니다. 젊음을 준다고 해도 20대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 이렇게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리기는 했습니다. 저에게 그것을 알려주려 암이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알려 주는 것을 보니 어지간하게 제가 말귀를 못 알아들었나 봅니다.
죽음은 저에게 무섭고도 무섭지 않은 그 무엇이 되었습니다. 내가 언제 죽던지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야 죽음의 공포가 덜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렇게 잘 살다가 가겠다고 오늘도 다짐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