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직면하면 알게 되는 것들
저는 이상한 엄마이거나, 모성애가 없는 엄마인가 봅니다. 내가 죽는다고 하면 아이들 생각이 먼저 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아이들 생각은 잠시뿐, 내 삶을 되돌아보기 바빴습니다.
모성애가 강한 엄마였습니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약간의 과한 희생도 했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큰 아이가 2.09kg으로 태어났습니다. 정말 뼈밖에 없는 모습으로 아주 작게 태어났습니다.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작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가지 추가 검사를 하느라 손가락 두 마디밖에 안 되는 발에 바늘이 꽂혀있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꼭 다 제 잘못 같았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제 인생은 모두 아이들을 위해 살았던 것 같습니다. 아이도 잠을 잘 자지 않았지만 아이가 잠이 들더라도 저는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이불이 아이의 얼굴을 가린다거나, 뒤집기를 잘못해서 아이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아이가 살아있는지 밤새도록 확인을 했었습니다.
워낙 작게 태어난 아이였으므로 먹는 것에도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모유도 꽤 오랫동안 먹였고, 이유식은 매 끼니마다 다른 종류로 직접 만들어 먹였습니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싶었습니다.
큰아이에 비해 작은 아이는 별 탈 없이 컸지만 그래도 남자아이 둘을 혼자 키우는 일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필 이때 신랑은 1달씩 해외 출장을 다녔습니다. 1년의 6개월은 해외에 있으니 혼자 두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큰아이가 10살이 될 때까지는 제 인생은 아이들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는 그렇게 애지중지 키우던 아이들이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면, 암에 걸린 후에는 ‘아이들은 잘 자란다.’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죽는다 해도 '아이들은 나 없이도 잘 자라겠구나..’를 그냥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잘 키우려 버둥거릴 필요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그릇만큼 알아서 잘 큽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아이들에 대한 걱정을 놓으니 제 인생이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나만 잘 살면 되는구나’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잘 사는 것이 아이들을 잘 키우는 최고의 방법임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아이와는 멀어지고, 나와 더욱 친해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위한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이들과 옥신각신했던 일들이 다 사소해 보였습니다. 그동안 내가 속상해했던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그토록 애를 쓰며 살았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암을 키웠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어리석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는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모든 일은 내가 존재하고 그다음인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도, 신랑도 내가 존재를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와 신랑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존재하고 내가 행복해야 아이와 신랑 또한 행복한 것입니다. 이 당연한 이치를 알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이 얼마일지 몰라도 ‘나’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낫기만 해 봐라.. 정말 멋지게 살아버릴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