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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성 Nov 22. 2023

좋은 것은 나쁜 것이다. 나쁜 것은 좋은 것이다.

나에게 행운이 오려나 보다


 신랑이 침대 옆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지간히 억울했는지 암으로 돌아가신 친정 아빠의 원망도 쏟아져 나왔습니다.



 "너네 아버지도 그러시는 거 아니다. 딸이 암 안 걸리게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 흐흑..”


 “신은 없다. 조상도 다 필요 없다. 장모님도 매일 기도하시는데 그러면 이런 일이 생기면 안 되는 거 아니냐?.. 흐흑.. “


 “.......”


 나보다 억울해하는 신랑에게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좋은 일이 좋은 일이 아니고, 나쁜 일이 나쁜 일이 아니야~ 나 혼나나 봐~ 본인 건강 챙기고 더 행복하게 살라고 따끔하게 혼나는 것 같아. 이 일로 더 건강해지고 더 행복해지려나 봐~그런가 봐~”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 나를 너무 혹사시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악착같이 살아야 잘 사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잘 못 살고 있었습니다. 아프다는 것은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증거였습니다.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암에 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힘듦을 애써 모르는 척했습니다. 아직 젊다고도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나에게 어쩌면 따끔한 회초리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프지만 일단 잘못을 했으니 맞아야 합니다. 하지만 회초리는 아프라고 맞는 것이 아닙니다. 회초리는 바르게 크라고 맞는 겁니다.








 살다 보니 세상은 나쁜 이 좋은 이고, 좋은 이 나쁜 것임을 알았습니다.



 약 6년 전 지독한 집주인을 만났을 때 일입니다. 집주인은 전세 계약을 하는 날 집을 같이 방문해서 못이 박힌 숫자까지 계약서에 기입을 했습니다. 재계약 날짜가 5개월이 넘게 남았음에도 재계약을 할 건지 말 건지 빨리 이야기를 해달라며 여러 번 전화가 왔습니다. 이사 갈 집을 구하고 연락을 드렸을 때도 난리가 났었습니다. 결국 마음에 쏙 들어했던 그 집은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이 터졌고 엄청난 스트레스에 ‘더러워서 집을 사야겠다’는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정말로 더러워서 집을 샀습니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대출의 공포를 이기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전 집주인 욕을 엄청나게 했었습니다. 그런데 집을 매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전 집주인이 은인으로 탈바꿈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신랑과 저는 악덕했던 집주인을 이제는 은인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만약 착한 집주인을 만났다면? 그 타이밍에 집을 샀을까요? 분명히 우리가 집을 사는 데 있어서 악덕 집주인이 한몫을 했습니다. 악덕 집주인이 집을 사야 할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알려준 셈입니다. 



 이렇게 안 좋은 일은 좋은 일이 되었습니다.




 지금 사는 집은 아이들 학교가 도보로 2~3분 거리입니다. 중학생 큰아들과 초등학생 작은 아들 모두 코앞에 학교가 있습니다. 친정엄마가 보더니 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저도 아이들 학교가 가까운 것이 좋은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몇 년을 살아보니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8시 20분이 되어야 일어납니다. 그리고 8시 45분쯤 집에서 나갑니다. 학교가 가깝다는 것은 아이들을 게으르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작년 큰아이 학부모 참관 수업 때 아줌마들과 커피를 마시며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아이는 학교에 가기 위해 매일 버스를 타고, 집에 올 때는 친구들과 2~30분을 걸어서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러웠습니다. 학교가 멀다는 것은 그만큼 일찍 일어나야 하고, 그만큼 많이 걸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걷기는 최고의 운동이 될 뿐만 아니라 같이 걸어 다니는 친구와의 추억도 쌓을 수 있습니다. 학교가 먼 만큼 아이가 성숙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학교가 가깝다는 것은 좋은 것일까요? 

 

 반대로 학교가 멀다는 것은 안 좋은 것일까요?




 아이들에게 독을 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것인 줄 알고 아이들에게 주었지만 오히려 그 반대가 되었습니다. 풍요로움과 편리함이 때로는 아이들을 망칩니다. 견딜만한 역경 속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듯 좋은 것은 나쁜 것입니다.




 결혼 때 양가 도움 한 푼 없이 결혼을 했습니다. 덕분에 3900만 원 7평 원룸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없이 시작한 결혼 생활은 안 좋은 것일까요? 아니었습니다. 자산을 키우면서 느끼는 뿌듯함과 행복이 있었습니다. 신랑과는 아끼느라 고생했던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동지애 같은 것도 생겼습니다. 전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덤으로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한 내공도 조금은 생긴 것 같습니다. 제가 만약... 집을 가진 채로 결혼을 시작했다면 행복했을까요? 아닙니다. 시댁에서 좋은 집을 받은 며느리는 편하지 않다는 것을 주변을 통해 알았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좋은 것을 받은 만큼 간섭도 받아야 합니다. 저는 사실 그런 면에서 매우 자유롭습니다.



 집을 가지고 결혼을 시작한 주변 사람들을 보면 성장이 없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열심히 돈을 모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간절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돈을 모으는 방법도, 돈을 버는 방법 또한 모릅니다. 알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산을 늘려가는 재미 또한 모릅니다. 전부 다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제가 본 주변인들은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없이 시작한 결혼 생활은 좋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해석하기 나름입니다. 내가 좋은 것으로 만들 수도 있고, 나쁜 것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다 내가 하기 나름입니다.

 



 크게 좋은 일도, 크게 나쁜 일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해석하는 내 역량에 따라 좋은 일과 나쁜 일은 결정이 됩니다. 이런 이치를 아니 좋은 일이 생겼다고 크게 좋아할 필요도, 나쁜 일이 생겼다고 크게 실망할 필요도 없음을 알았습니다.




 나에게 나빠 보이는 일이 생겼다면 즉, 역경이 생겼다면 나를 더욱 성숙시키려고 온 것입니다. 나를 더욱 성장시키려고 온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는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입니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저는 크게 되려나 봅니다. ㅋ




 이번엔 나빠 보이는 것이 나에게 왔습니다. 크게 나빠 보이니 저에게 크게 좋은 일이 생기려나 봅니다. 인생은 그렇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분명히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기 위해 암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그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나에게 엄청나게 큰 행운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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