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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스갯소리 Oct 23. 2024

아무튼 춘천

추억과 우정이 자란 곳

대학 시절을 춘천에서 보냈기에 졸업하고도 일 년에 한 번 즈음 춘천가곤 한. 닭갈비 먹고 대학 교정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금새 흡족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번에는 친한 대학 동기들과 1박 2일을 했다. 나의 아기 출산 석 달을 앞두고 한정적인 자유시간을 의미있게 보내기 위해 다급히 짐을 꾸려 간 여행이다.


그녀들을 별명으로 칭해보자면 너구리, 거북이, 깨비, 그리고 나(만두)까지. 총 네 명이 모이기로 했으나, 전전날 깨비의 셋째 임신 소식으로 부득이 세 명만 모이게 되었다. 깨비가 춘천까지 오려면 자차로 2시간 반을 운전해야 했는데 배땡김 증상이 있어 임신 초기라 안정을 취해야 했기 때문이다. 먼 거리에 사는 깨비와 오랜만에 조우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어 못내 아쉬웠지만 축하할 일이니 깨비와의 조우는 다음 기약했다.


춘천에 도착하고  는 역시 닭갈비. 야채들과 함께 맛있게 익어가는 닭갈비를 기다리면서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너구리의 첫째 육아, 거북이의 연애, 깨비의 셋째 임신, 나의 임신과 휴직 생활. 이것들 중 가장 쇼킹하고도 기뻤던 소식은 단연 깨비의 셋째 임신 소식이었다. 우리는 깨비의 다산 기운을 기특히 여기며, 셋째 아이의 성별을 가늠해 보기도 했다. 깨비가 갑자기 못 오게 되면서 전날 우리 셋 각각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 와중에 출산을 독려하는 말을-미혼인 거북이에게도, 이미 임신 중인 나에게도-빼먹지 않았다는 것을 공유하며 한바탕 웃었다.


닭갈비를 맛있게 먹고 숙소로 들어가는 길, 편의점에 들러 밤에 먹을 음료와 주전부리를 샀다. 평소에는 건강을 위해 밤에 주전부리를 하지 않는 편인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밤에 먹을 주전부리를 고를 때는 나도 모르게 흥이 난다. 너구리와 거북이가 마실 맥주 몇 캔을 계산하려고 하자, 편의점 알바생이 내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신분증을 요구했다. 것참, 서른 중반인데 뭐 그런걸 다...

편의점을 나서는 순간까지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지울 수 없었다.


숙소는 주택 밀집촌에 있었는데, 주차를 하고 5분쯤 걸어가야 했다. 골목 골목 꺾어 걷다보니 집집마다 감이 풍성하게 달린 감나무가 눈에 띄었고, 골목길에 오도카니 서 있는 예쁜 고양이와 마주쳤다. 계속 쳐다보고 싶은 예쁜 고양이를 뒤로하고 조금 걷다가 찾아낸 숙소는 겉보기에 사진보다 꽤 아담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개방감이 확 느껴지면서 은은한 음악 소리와 밖에서 볼 때보다 훨씬 더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와, 대학 시절에 이런 곳에서 같이 살았으면 진짜 재밌었겠다."

"진짜 좋았겠다. 그런데 우리 모여 살았으면 매일 야식 먹어서 살쪘겠."

"그건 그래."


조그마한 마당에 나가 약속이나 한듯 일사불란하게 사진을 찍고, 바깥 공기가 춥게 느껴져 안으로 들어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심을 먹은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대학 시절에 즐겨먹었던 '퓨탕(퓨전탕수육)'을 꼭 먹기로 했었기 때문에, 배달음식으로 김치피자맛 퓨탕을 시켰다. 배부르다고 남은 한 개의 탕수육을 누가 먹을지를 서로 미루다가 끝끝내 하나 남겨놓고,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와 과자 후식으로 헤치웠다.


숙소에 비치되어 있는 루미큐브까지 몇 판 하고 나니 밤이 꽤 깊어져 잠이 쏟아졌다. 그냥 자기엔 아깝다며 티비 앞에 모여 보고싶은 영화를 찾아봤지만, 쏟아지는 졸음에 푹신한 침대에 파묻혀 도란도란 추억의 맛을 되새긴 춘천에서의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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