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기 에세이) 결핍의 대물림

by 우스갯소리

아빠는 어렸을 때 배를 곯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아빠가 장성해 오빠와 나의 아빠가 되었을 때, 우리에게 먹는 것 만큼은 늘 푸지게 먹였다.

퇴근 길 아빠의 손에는 먹거리가 들려 있었고, 아빠가 과일을 구매할 땐 과일의 질에 따라 싼 것과 비싼 것 중 늘 다소 비싼 것을 선택했다.


오빠는 어렸을 때 배를 곯지는 않았으나, 사고싶은 장난감을 사지 못했다.

그런 오빠가 장성해 아들 둘의 아빠가 되어, 아들들에게 갖은 이유를 붙여 장난감을 사준다.

어느 날은 연초니까, 어느 날은 어린이날 한 달 전이니까, 어느 날은 치과에 갔으니까, 어느 날은 로봇 새 시리즈가 나왔으니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남의 눈치를 보느라 자기 주장을 못했다.

그런 내가 장성해 아들의 엄마가 되니, 아들만큼은 생각을 마음에 쌓아두지 않고 다 풀고 살았으면 싶다. 싫으면 싫다고 거절도 잘 했으면 좋겠다.


종류는 다르지만 우리네 각자의 결핍은, 우리가 부모가 되고 자녀를 키울 때 자녀의 충족으로 메꾸고 싶어진다. 그러나 의도치 않은 방향에서 자녀에게는 또다른 결핍이 생기게 마련이고, 결핍을 충족시키려던 행동이 되레 결핍을 낳기도 한다.


아빠는 우리들 입에 들어가는 것에 신경썼지만 미처 당신의 입단속은 못하여 자주 남을 험담했다. 그걸 듣고 자란 딸은 남들도 자기를 험담할 것만 같아 자주 의기소침해졌다. 오빠는 아들들의 장난감 선반을 풍족하게 채워주었지만 비즈니스가 중요해 아들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었다. 그 애들은 이제 장난감보다 아빠를 갈구한다. 나는 막 100일이 지난 아기를 키우고 있기에 나의 행동들이 아기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가 생각하며 글을 쓴다. 아빠와 오빠가 그랬듯이 나 역시나 자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부단히도 애를 쓰겠지만, 분명 내가 모르는 지점에서 아이에게 결핍이 생기겠지.


누군가에게는 물질이, 누군가에게는 애정이, 누군가에게는 배움이, 누군가에게는 자율성이 결핍이다. 우리가 인지하든 인지히지 못하든 매일 자신과의 결핍과 실랑이하며 살고 있다. 뛰어 넘으려는 노력을 하든, 드러나지 않게 숨기든, 자녀를 통해 충족하려거든 말이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애순의 대사가 떠오른다.

"난 금명이는 다 했으면 좋겠어. 막 다 갖고, 다 해먹고, 그냥 막 다. 펄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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