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그렇지
아빠의 외도를 눈치챘던게 여섯살 무렵이었을까.
지금은 희미하지만 아마도 어린 내가 가게 앞에서 놀다가 저멀리 다른 여자와 어울리고 있는 아빠를 봤던거다. 외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이였지만 평범치 않은 관계라는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여섯살 꼬맹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잘못 생각했을거라고 도리질 치는 일 뿐이었다. 열심히 도리질 치다 보니 그 일은 곧 잊혀졌다.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빠가 주차장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다가오는 나를 발견한 아빠는 서둘러 통화를 마무리 했다.
"엄마야?"
내가 물었다.
"아니. 왜, 엄마 같아?"
아빠가 어색한 웃음을 띤 채 말했다.
나는 평소와 다른 아빠의 어조와 말투를 통해 다른 여자라는걸 알았다. 겉이든 속이든 어린 아이가 자라는 속도는 어른의 생각보다 빠른 법인데, 아빠는 내 눈치도 저만치 빠르게 자랐다는걸 몰랐다. 아빠에게 따져 묻거나 엄마에게 말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증거도 없이 아빠에게 물으면 더 교묘히 숨길 것 같았고, 엄마는 아빠를 철썩같이 믿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저 웃지 않았다. 내가 웃지 않으면 아빠가 외도를 그만두리라는 지극히 어린아이다운 기대를 했던거다.
"아이가 성실하고 수업도 잘 듣는데 제가 웃긴 이야기를 하면 반 아이들이 다 웃을 때에도 안 웃더라구요."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학부모 상담에서 엄마에게 말했다. 집에서 웃지 않던 시간이 쌓여 학교에서도 웃지 않았던 모양이다. 엄마는 그 이유를 알 길이 없으니 나를 밝은 아이로 되돌리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나는 웃으려고 애써야 겨우 웃을 수 있었다.
중학생 때 아빠의 핸드폰 문자내역을 봤다.
'OO이 데리러 가요. 이따 가게 일 끝나고 맥주 마시러 갈까요?'
그동안 심증만 있었던 외도 상대방의 실체를 확인하자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깊이 생각할 겨를 없이 상대방에게 통화 연결을 했다.
건너편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역시나 낯선 여자 목소리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곧 그 번호로 문자가 왔다.
'당신이에요?'
통화와 문자 내역을 지우고 핸드폰을 원래 있던 자리에 놨다.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아빠에게 화난 사람처럼 구는 것 뿐이었다. 이때부터 내 소원은 어서 성인이 되어 독립하는 것이었다. 돈을 벌 수 있게 되면 엄마랑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땐, 아빠는 나이가 많이 들었고 그로인해 왜소해진 체구가 자꾸 눈에 밟혔다. 내가 자라는동안 아빠가 보호자 역할을 한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기에, 이전의 일은 잊고 아빠와 잘 지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부모님을 여의고 젊은 나이에 시집온 엄마에게 나의 아빠는 커다란 존재였기에. 아빠와 단둘이 등산을 하거나, 부모님이 좋아하는 일일드라마를 같이 보고, 비오는 날 엄마와 셋이 빈대떡을 사먹기도 하면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대화가 부재했던 지난 날들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실은 어린시절 나의 우주였던 아빠와의 화목은 늘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유머러스한 편인 아빠와 농담을 주고받는 그 시간들이 좋았다.
나에게는 더없이 충만한 시간이었는데 아빠는 못내 따분했던걸까. 향수를 뿌리거나 지인에게 줄 반찬을 싸달라는 등 하나 둘 이상한 낌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도할 때의 아빠는 일말의 죄책감 때문인지 평소보다 조금 오버해서 엄마와 나에게 잘해주려고 한다. 그리고 어딘지 나사가 풀려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아빠의 요구에 곧이 곧대로 반찬도 싸주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아빠의 외도 패턴을 익히 알고 있던 나는 눈치챌 수 있었다. 이제는 무뎌질 법도 한데 잠시 화목하게 지냈던 시간 때문이었는지 몇 날동안 잠이 안올 정도로 실망감과 분노가 컸다.
친오빠에게 사실을 알려 아빠 차를 따라가 보도록 했다. 그리고 허탈할 정도로 쉽게, 다른 여자와 있는 아빠를 잡았다. 그 길로 오빠는 그 여자를 차에 싣고 나에게 왔다. 카페에 오빠와 나, 그 여자와 셋이 앉아 심문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얼마나 만났는지, 아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만난지는 비교적 얼마 안되었고, 소상공인인 아빠를 공장 운영자로 알고 있었다.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기까지한 아빠에게 그나마 있던 정도 다 떨어졌다. 어느정도 파악이 끝나자 오빠는 그 여자에게도 자녀가 있기에, 그 자녀에게도 이 관계를 알려야겠다고 했다. 그 여자는 적어도 엄마로의 염치는 있어 아빠를 다시는 안 만나겠다며 떠났다.
'너 오빠한테 무슨 말을 한거야'
아빠에게 카톡이 왔다. 잡아떼며 오히려 나를 질책하는 그 태도에 대답할 가치는 없었다. 그렇게 또다시 아빠에 대한 신뢰와 화목을 쌓으려던 노력이 허물어졌다. 본가에 거주하고 있었기에 아빠와 같은 식탁에 앉아 밥 먹는 시간이 전에 없이 괴로웠다. 엄마는 부녀 사이에 냉기가 돈다며 이상하게 여겼지만, 그냥 좀 아빠와 다투었다고 둘러댔다.
아빠는 나에게 둘러대려는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나도 장문의 답을 썼다, 지웠다, 짧은 말만을 남겼다.
'어릴 때부터 아빠가 그래온거 알고 있었어. 비밀로 묻어두고 잘 지내보려고 했는데, 지인들한테도 망신 당하기 싫으면 이제 엄마한테 잘해요.'
대화할 마음도 없을 뿐더러 감정을 드러내는 것조차 아까웠다. 그렇게 부녀 지간 침묵의 시간이 몇 년째 지속되었다.
내 마음에 가장 사무치는건 아빠를 떠받들어 살아온 엄마에 대한 연민이고, 그 다음으로 사무치는건 자녀로서 아빠와 즐거이 누릴 수 있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들을 빼앗긴 것이다. 자녀에게 부모의 외도는 어떤 조건을 갖다 붙여도 이토록 큰 상처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