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 쌓이는 시간

내년에도 또 오면 좋겠다

by 우스갯소리

해외에서 현지인과 소통하는 경우는 한정적이다. 나같은 극내향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해외 여행을 너댓번 갔지만 음식을 주문할 때와 황급히 화장실 찾을 때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소통할 일이 없었던 것 같다. 해외 봉사는 일정 기간 그 마을에서 주민들과 낯을 익히며 함께 생활하는 일이므로 나같은 극내향인도 현지인과 소통할 기회가 많다. 언어의 장벽이 존재하긴 했지만 짧은 영어와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는 눈치가 있다면 말은 얼마든지 주고 받을 수 있었다.


때로는 필요에 의해, 때로는 친목을 위해 우리는 소통했다. 이를테면 수업을 위해 빔프로젝터를 빌려야 하거나, 수업 중 아이들이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해 현지 선생님들에게 부가적인 설명을 요청하는 상황에서 필히 소통을 해야했다. 내쪽에서 엉망으로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현지 선생님들의 센스는 남달랐다. 내가 가르친 학생 중에는 말리기 힘든 두 명의 대단한 말썽꾸러기들이 있었는데, "나도 한국에서 본업이 선생님이야. 당신의 마음을 이해해."라고 하니 현지 선생님들 역시 내 마음을 모두 이해한다는 듯 따뜻하고 애잔한 눈으로 나를 바라봐 주었다. 국경을 뛰어넘는 동지애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여유가 있는 시간에는 현지 청년들과 동네 슈퍼에서 같이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사소하게는 음식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청년들의 연애 고민도 듣고, 나의 결혼 생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취업과 결혼을 앞둔 청년들의 고민은 한국이나 필리핀이나 공통된 부분이었다. 청년들은 자신들이 나고 자란 그곳 쿠마바오를 사랑했지만,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 떠나야 할지 머무를지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길가에 있는 소똥을 보고 피하는 나에게 '공룡 똥이니 조심하라'고 놀려주기도 하고, 나무에 달린 코코넛 열매를 손수 따다 주기도 하고, 자신의 전공을 살려 요리를 해주기도 했다.


평소에 누군가와 친해지는 과정은 상황적으로 이유가 있어서인 경우가 많다. 같은 반 친구라서, 직장 동료라서, 관심사가 같아서... 쿠마바오에서는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상대방과 친해지는 경우였으니, 목적성이 없는 우정에 가까웠다. 지금 그 순간의 상대방을 궁금해하고, 알아가고, 좋아해 주고, 베풀고 싶어하는 온정이 더욱 따뜻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송, 내년에도 또 오면 좋겠다."

일주일이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정이 많이 들어서, 나 또한 내년에 또 오리라 확신있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지키지 못하는 약속은 안하느니만 못하여 대답은 신중해야 했다. 같이 지내는 동안 그들이 1년에 한 번 방문하는 우리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리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쉽사리 내년을 기약할 수는 없었지만, 나 또한 진심을 담아 말했다.

"나도 다시 올 수 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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