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일이란 무엇인가

by 미는 여자

일하고 싶다.


이 백 번의 생각이 일하기 싫다로 바뀌는 건 순식간입니다. 오전 내내 점심시간만 기다리다가 오후엔 퇴근시간을 기다리는 틀에 박힌 저의 일상은, 일이란 걸 하고 싶어 했던 간절함의 결과 값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극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건 비극이 아니라 비극적입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장르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그 사실을 알면서도 현재가 아닌 다른 시간 다른 장소를 끝없이 소망한다는 점에서.


나는 왜 일을 하려고 하는가?


일이란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하는 행위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는데, 이러다가 저는 월급날만 기다리다 죽는 비루한 인생 주인공이 되는 건 아닐까요. 제가 알고 있는 기다림에는 적어도 거룩함과 고독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고도’를 기다리고 떠난 이를 기다리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바깥의 어마한 세계를 기다렸던 시절이 비교적 멀지 않은 시기에 제게도 있었습니다. 형식도 없고 형태도 없는, 하얀 눈이 끝없이 쌓이는 방식으로 구축되었던, 저만의 기다림의 세계로부터 저는 너무 멀리 떠나온 것 같습니다.

살아 있으므로. 살아갈 날을 위해. 밖에서는 고요하고 안으로는 치열했던 필야의 몸부림이 나이테처럼 제 몸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 더듬는 손길이 조금 아려오네요.


지금 무엇을 기다리는가?


자문해 봅니다.

저는 여전히 달콤한 음식과, 빈둥대는 주말 오후와, 입금 알람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슴 설레는 기다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미지를 향해 문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그것, 먼저 손짓하지 않으면 눈길조차 안 주고 가버릴 그것을 위해 이젠 기다림보다 앞서 달려 나가야 한다고 스스로 채근합니다. 선로 위의 기차처럼. 식식 더 거칠게. 어둠이 드리워진 숲이라도 가자고. 무엇이 기다리든 상관 말고. 시간이야말로 기다릴 줄 모르니. 기다림보다 한 발 앞서 걸어가자……


커피포트의 스위치를 누르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어요. 조금 전부터 싸리 눈이 날리기 시작했고요. 바람과 뒤엉켜 춤추듯 흩날리고 있네요. 그 사이 물이 끓고 있네요. 발굽처럼 내달리는 소리에 맞춰 영영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눈송이가 눈앞에서 휘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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