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이 영원 같을 때가 있어요. 무한궤도 속에 갇혀버린 느낌, 그래서 살아 있다는 감각마저 둔해지는 그런 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앞에는 세 명의 면접관이 앉아 있었어요. 간단한 자기소개와 지원동기에 대한 구술이 끝나자 한 면접관이 서류를 뒤적이던 묻더군요.
-여기보다 더 좋은 일자리가 생기면 어떻게 할 건가요?
전 망설임 없이 대답했지요.
-일을 한다는 것은 회사와의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제 얘기를 듣던 친구가 말했습니다.
“바보! 옮긴다고 해야 붙는 거야.”
“왜?”
“너의 솔직함을 보려는 거거든.”
딱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 옆에 앉은 면접관이 묻더군요.
-우리 구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데 그들을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그래서?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핵심 질문임을 단박에 알아챈 친구가 대답을 재촉했어요.
“솔직히 그런 건 나한테 물을 게 아니라 자기네들이 고민해야 되는 거 아니니?”
친구가 제 말뜻을 모를 리 없었지요. 그녀가 김 빠진 어투로 위로하더군요.
“원래 한 번씩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고 그러잖아. 그래서 아무 말도 못한 거야?”
“한마디 하기는 했어. 잘 모르겠습니다.”
친구는 말이 없었습니다.
면접이 끝나갈 즈음 가운데 앉은 면접관이 서류를 추려 탁탁 탁자를 내리치더군요.
-자,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면 짧게 해보세요.
“이것도 질문인 거니?”
제 말에 친구가 알은체를 하더군요.
“배점 있는 질문은 아닌데 이게 기회인 거거든. 자기를 최종 어필할 기회. 그니까 임팩트가 있어야지. 넌 글 쓰는 사람이니까 뭐가 달라도 달랐겠지. 그치?”
저는 어느 때보다 당당하게 대답했다고 말해주었어요.
“뭐라고 했는데?”
제가 뜸을 들이자 친구가 강아지처럼 제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코맹맹이 소리를 내더군요.
“그러지 말고 얘기해 봐.”
귀여운 것! 저는 대답한 그대로 읊어주었지요.
“저는 제가 부족한 사람이란 걸 잘 압니다. 익숙한 것이 편하고 좋은 것도 압니다. 하지만 변화는 익숙한 것을 깨야 찾아옵니다. 이번이 아니더라도 기회가 된다면 함께 일해보고 싶습니다. 이러니까 면접관이 말이 없더라.”
친구가 놀라 반문했어요.
“그게 무슨 뜻이야? 네가 떨어질 줄 알기라도 했다는 거야?”
“기존에 일하던 사람이 다시 채용될 거라는 말이 돌았어. 그니까 면접은 형식적이었던 거지. 시간 낭비일 게 뻔했지만 놀면 뭐 하겠니. 경험 삼아 면접이라도 보는 거지.”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지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란 걸 친구도 알았겠지요. 면접에서 떨어진 이들이 흔히 말하는 핑곗거리라고나 할까요. 불합격의 이유를 외부에서 찾아야만 했던 이유. 그래야만 무릎이 꺾이지 않고 다시 걸을 수 있었어요. 2년 가까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친구는 면접에 관한 얘기 대신 이번 설에는 눈이라도 실컷 내렸으면 좋겠다고 아득한 눈길로 말했습니다.
침묵은 사람이 디딜 수 있는 마지막 계단 같은 것이지요. 그곳에 서 있으면 시간이 천천히 흘러갑니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눈이 날리고 있더군요. 눈 쌓인 나뭇가지 위에서 참새들이 짹짹거리며 몸을 부딪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