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알려드립니다. 칼날 같은 마음을 갖는 대신 칼자루를 쥘 방법이 있어요. 이건 아무도 다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일자리를 전전하며 알게 된 사실 하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저에 대해 조금 더 말씀드려야겠어요. 제가 비정규직 근로자인 건 당신도 알고 계실 테지만 시청, 보건소, 도시공사 등 공공기관에 서른두 번 지원하고 여덟 번 옮겨 다닌 사실까지는 모르셨을 거예요. 이 많은 횟수가 저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의 집념으로 만들어낸 숫자여서 자긍심마저 느껴져요. 어떤 면에서는 노하우가 생긴 것도 같고요. 제 경력 가운데 어떤 것을 어필하고 어떤 점을 묻어두어야 하는지 가려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구직은 눈치 싸움이에요. 운이 나빠 떨어질 뿐 탈락이 곧 패배는 아닙니다.
이런 경험치도 무용해지는 순간이 있어요. 바로 첫 출근날인데, 이날만큼은 면접 때의 긴장감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아침에 사무실 문 앞에 서면 저는 먼저 심호흡을 합니다. 마음에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해요. 저에게 꽂히는 시선들과 그와 정반대의 무덤덤함은 같은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문을 여는 순간 저는 줄무늬 옷을 입은 이방인이 돼요. 경계와 차별의 대상이 되지요.
‘그래서 당신 수준이 어느 정도인데요?’
‘그런 걸 알아 뭐하게요.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날 사람인데요.’
이 무언의 말들이 저를 통과해 갑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새로 근무하게 된 기간제 근로자 아무개입니다.”
수치심에 저는 겨우 이런 말을 내뱉습니다. 이 무해한 항변이 이분된 공간을 잠시 휘저어놓습니다. 새로운 직원이 왔는데 왜 아무도 환대하지 않지? 저에게는 이것이 늘 의문이었지요.
이 관문을 통과하면 또 다른 단계를 넘어야 합니다. 제게 주어진 업무는 별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는 정도지만 직장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적응하는 것 또한 업무의 일부분이라고 한다면 한 번도 수월했던 적이 없어요. 어색하고 불편한 것을 감내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가 세세히 일러주면 좋겠는데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요. 긴가민가 고민하고 저녁마다 저의 행동을 복기하며 자문하는 과정이 쓸데없이 소모적이라 해도 저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작은 잎사귀에 불과한걸요.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흔들리고 젖으면서 돋아나는 잎사귀 말이지요. 커다란 잎사귀 밑에서 눈에 띄지 않게 가만가만 자라는 것들 가운데 하나지요.
누군가는 저에게 반문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어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이런 과정은 필수가 아니겠냐고. 이건 이야기 소재거리도 되지 않는다고요. 또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진취적인 사람이라고 자기소개하더니 다 거짓이었냐고요. 문제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이 점점 닳는다는 것이에요. 소모품처럼 본래와 다른 모양이 되어가는 과정이란 겁니다. 때로는 이유 없이 화가 나고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목도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던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사람이 닳는다는 건 타인에게 무감각해진다는 말과 같아요. 타인을 헤아리려는 마음이 저만치 물러나 버려요. 하루하루 닳아가는 자신과 싸우기도 벅차지요. 짐을 싸고 풀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일그러진 얼굴 하나가 거울 속에 들어앉아 있는 겁니다.
지속 불가능한 일자리를 전전하며 알게 된 사실 또 하나. 말하자면 이것이 칼자루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이상하게도 저는 실직 상태에서는 직장을 구하려 애쓰면서 막상 직장에 다니면 가슴 저변에 답답함을 느끼곤 합니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얽매임이 싫어 시간이 빨리 가기를 바라지요. 이럴 땐 기간 만료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사무실 의자에 앉아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것들을 펼칠 수 있는 시공간적 자유가 생긴다고 생각하면 제법 위풍당당해져요. 생각해 보건대 미래의 자산은 시간이 아닐까요. 자유로운 시간이 많은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자산가 아닐까요.
칼자루는 마음만 먹으면 쥘 수 있어요. 아무도 해치지 않는 선한 칼자루예요. 온 거리에 나뒹구는 낙엽들. 그들의 칼춤이 당신의 눈에도 보이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