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 거실 한가운데에는 ‘참을 인’ 한자가 붙어 있습니다. 몇 달 전 A4용지에 출력해서 붙여놓은 것이에요. ‘칼날 인’ 자에 ‘마음 심’ 자가 더해져 ‘칼날의 아픔을 견디는 마음’이라는 뜻이지요. 한때는 인내라는 게 상당 부분 인격과 연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은 교양과 인격이 부족한 것이라고 오단했지요.
제가 사는 집은 오래된 구축 아파트입니다. 15년 전에 이사 와서 현재까지도 살고 있어요. 인근에 초중고등학교가 있는 데다 교육열 높은 동네라는 소문에 별다른 고민 없이 결정했지요. 십 년 정도 지나면 재건축의 호재가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고요. 이삿날을 받아놓고 발품을 팔아가며 집을 손봤습니다. 전체적으로 크림색 실크 벽지로 톤을 맞추고 천장에는 하늘색 바탕에 구름이 그려진 도배지로 포인트를 주었어요. 하늘이란 게 꿈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으니 자는 동안에도 꿈꾸기를 멈추지 말자는 의미에서요. 이런 감성이 당신에게도 우스운가요? 딸 아이는 아주 기겁을 합니다만 그래도 싱크대와 화장실은 하얀색으로 튀지 않게 시공했답니다. 단장하고 보니 완전한 새집이 되었지요. 이 정도면 십 년은 거뜬히 날 수 있겠는걸. 이사 첫날 하늘색 천창을 보고 누워 저는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퍽 시니컬하지만 딸 아이도 어렸을 때는 달랐지요. 살가운 면도 야무진 면도 있었습니다. 고된 학업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목표한 바를 이루어냈어요. 그건 집이라는 안전한 울타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는 집이 한 뼘만큼 넓어져 기쁨을 배가시켰고, 슬플 때는 웅크린 모습으로 저를 위로했습니다.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고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어도 집에서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요. 집은 안전했고 더없이 평화로웠어요. 가끔은 흐트러져도 그것들을 말끔히 정리하고 나면 집은 다시 예전처럼 아름다워지곤 했습니다. 몇 년 뒤 남편이 승진 소식을 전해왔을 때는 차이콥스키 발레곡에 맞춰 그 큰 덩치를 조금 움직이기도 했다니까요. 이곳에 이사 온 뒤로 모든 일이 잘 풀리는걸. 저의 혼잣말에 사각 반듯한 집이 두 팔 벌려 화답했습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집도 예외가 아니고요. 나이가 먹을 대로 먹은 집은 그전과는 확연히 달라집니다. 가장 큰 변화는 벽에 균열이 생기는 것이에요. 틈을 메워도 더 깊은 곳에서 미세한 구멍들이 올라오지요. 무엇인가 고장 나고 그 빈도가 잦아집니다. 막힌 하수구를 뚫어도 속 시원하게 내려가지 않고요. 관리사무소에 연락하면 매번 비슷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워낙 오래된 집이라 다 뜯기 전에는 어디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어요.”
이쯤 되면 잠잘 때 똑 똑 떨어지는 물소리 정도는 참고 견뎌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럴 때 이사를 결심하는 것 같아요. 고쳐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요. 주변에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고 가깝게 지내던 이웃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저는 다짐했습니다.
‘두고 봐, 결국 참는 게 이기는 게 될 테니.’
이건 제게 종교 같은 것이었어요. 이 말을 붙잡고 몇 년을 더 버텼지요. 한 번씩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이 몰려올 때는 집안의 작은 인테리어를 바꾸었어요. 거실에 짜 넣은 책장을 뜯어내거나 화장실 타일을 바꾸는 식으로요. 하다못해 집안의 전등이라도 교체하고 나면 며칠은 견딜 만했어요. 해마다 자질구레한 무언가를 바꾸었지만, 낡은 골조만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문득 한계라는 말을 떠올랐습니다. 바로 얼마 전부터요.
지난여름 아파트 화단에 웃자라 있는 고추와 가지 모종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오르더군요. 아파트 공유지를 사유지처럼 경작하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동주택 윤리도 모르나 싶어서 고개를 가로젓게 되더군요.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어요. 왜 이러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유가 보이더군요. 제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늘어나고, 주변이 온통 제멋대로인 것투성이라는 사실에 저는 분노를 넘어 절망하고 있었던 겁니다. 집을 집구석으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해 여태 공들여 가꿔왔는데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된 것 같아서요.
시간은 중앙에 있던 모든 것들을 주변으로 몰아내고야 말았습니다.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운 집에서 산다는 것은 외부로부터 전혀 보호받지 못한다는 뜻과 같아요. 어디 집뿐이겠어요. 직장도 마찬가지지요. 저의 직장은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워요. 아무것도 저를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오로지 혼자 힘으로 계절을 뚫고 가야 하지요. 참고 버티면 좋은 날이 온다는 교리는 진즉에 버렸고요.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집 한 채가 덩그러니 서 있는 이 풍경을 좀 보세요. 절로 두 손을 모으게 되는 이 풍경 앞에서 당신은 얼마나 자유로운지요.
아침에 눈을 뜨면 저는 제일 먼저 ‘참을 인’ 자를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앉아 문에 붙여놓은 ‘참을 인’ 자를 또 들여다봅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을 들여다봅니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빛이 바랜 하늘색 벽지가 울고 있습니다. 안개 낀 출근길,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발바닥에 들러붙은 껌처럼 한 가지 의문만은 끝없이 따라붙습니다. 마음은 왜 칼날을 품게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