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을 도형으로 환원할 수 있다면 인간은 어떤 모양에 가까울까요? 원일까요, 사각형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생태와 유사한 삼각형 꼴일까요? 저는 사람이 둥글게 태어나 살면서 모가 나는지 아니면 모나게 태어나 점차 둥글어지는지 궁금한 적이 있습니다. 모가 나든 둥글어지든 세상은 이러한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겠지요. 제가 알고 있는 한 사람도 이런 과정 중에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녀를 만난 것은 이직한 직장에 처음 출근한 날이었어요. 그녀는 저와 같이 채용된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지요. 2월이라 아직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어 꽤 추워 보였습니다. 얼굴은 새하얗고 머리카락은 새까만 흑발이어서 멀리서도 눈에 띄었지요. 저는 복도 긴 의자에 그녀와 나란히 앉아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사교성이라고는 개한테 줘버리고 태어난 제가 직장에서 젖은 낙엽이 되겠다 마음먹은 후로 나름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아직 춥네요.”
묵묵부답인 그녀에게 적지 않은 나이라는 은혜를 입어 한마디 더 할 수 있었지요. 그녀는 여전히 답이 없었습니다. 가뜩이나 서늘한 공기가 더 차갑게 느껴지더군요. 그녀는 옆 사람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어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무언가를 메모하거나 가방에서 거울을 꺼내 들여다보는 행동을 너무나 평온하게 하고 있었어요. 메모하는 동안 앞으로 쏟아진 머리는 고개를 뒤로 젖혀 흔들어 가지런하게 했는데 손도 쓰지 않고 꽤 능숙하게 하는 것이 오래된 습관 같아 보였어요. 그때마다 확연히 드러나는 얼굴에서는 나이가 읽히지 않았고요. 어찌 보면 어리게도, 퍽 성숙하게도 보였습니다. 그렇게 이십여 분쯤 지났을까, 관리자가 감염병관리과 명판이 적힌 문을 열고 나오더군요.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문을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지금은 어수선해도 차차 나아질 겁니다. 저희도 발령 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 두 분은 여기서 근무하시면 됩니다. 아참 두 분 면접 때 서로 보셨던가요?”
그녀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요. 처음 뵈었어요.”
뒤이어 저도 대답했지요.
“서로 협조해서 일 잘 처리해주시고요. 다들 자기 업무 하느라 바쁘니까 점심시간 되면 두 분이 알아서 다녀오시면 되고요.”
“네.”
“네.”
“그리고 여기, 각자 편한 데 앉으시면 됩니다.”
“제가 여기 앉을게요.”
그녀가 냉큼 자리를 선점하더군요.
“네. 그러세요.”
관리자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창가 자리였는데 저는 아쉬움에 쩝 입을 다물었습니다, 관리자가 코로나19 지침이 적힌 A4용지 두 장을 나눠주며 개략적인 설명을 시작하더군요. 그녀가 가방에서 삼색 볼펜을 꺼내 색색으로 밑줄을 긋고 열심히 받아적는 것도 거의 동시였지요. 그 모습이 시험을 앞둔 학생처럼 열성이어서 빈손인 제가 뻘쭘했어요. 관리자가 나가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규정을 읽고 또 읽으며 오전 시간을 보냈습니다. 달리 할 일이 없었지요.
“같이 식사하러 가실래요?”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그녀에게 물었더니 그녀가 책상 위 물건들을 정리하며 뜸을 들이더군요. 거절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녀가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밥을 먹으면서도 그녀는 말이 없었습니다. 사는 곳이 어디냐, 경력은 얼마나 되었느냐는 제 두 가지 질문에 단답형 대답만 돌아왔지요. 오후에도 분위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고요. 첫날 그녀와 나눈 대화는 총 열 마디가 되지 않았을 거예요.
이런 서먹한 관계가 2주 넘게 이어졌어요. 그 사이 그녀에 대해 알게 된 게 있다면 그녀가 이중 자음이 들어간 단어를 발음할 때마다 바람이 새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이었어요. 목소리가 청아해서 바람 소리가 선명히 들려왔어요. 사실 저는 그녀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습니다. 꽉 막힌 금요일 퇴근길 도로에서 미국 콜로라도 국도를 달리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라고나 할까요.
“선생님은 목소리가 좋은 것 같아요.”
어느 날인가 점심을 먹으며 제가 말했더니 그녀가 웃으며 대답하더군요.
“제가 통역 일 할 때 이태리 사람도 그런 비슷한 말 하더라고요. 미국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요. 걔네들이 원래 좀 집적거리는 경향이 있으니까.”
제게 그렇게 길게 말하기는 처음이었어요. 놀랍기도 하고 방향이 엉뚱해서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녀의 전직이 통역사라는 사실에서 미스터리가 좀 풀리는 것 같기도 했고요. 똑같은 시간에 두 배의 말을 하는 직업이라면 침묵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 후로 저는 그녀가 띄엄띄엄 말할 때마다 그 조그만 입을 더 유심히 쳐다보게 되었지요. 짧고 굵은 이야기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요.
물꼬를 트기까지가 어려웠을 뿐 그녀는 감추는 것이 별로 없어 보였어요. 그녀의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으로 퇴직해 지금은 취미가 등산과 배낚시가 되었다는 둥 딸 아이의 결혼상대자가 모 기업에 다닌다는 것까지 그녀의 이야기 소재는 참으로 광범위했습니다. 통역사 시절 외국 바이어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거나 체코 여행 때 찍은 사진도 허물없이 보여주었고요. 그러면서 정작 중요한 얘기는 쏙 빼놓았지요. 저는 그녀가 오랜 시간 규정지를 들여다보고 숙지했음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종종 제게 규정에 대해 되묻거나 민원 전화를 돌려주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한 이유를 추리하면서요. 그녀는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거나 적어도 인지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좀 더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필요했지요.
저는 날마다 고민했습니다. 그녀를 어디까지 배려해야 하지? 이건 순전히 제 몫이었지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에너지가 부족하거나 업무가 바쁠 때는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때로는 한숨과 역정이 일어 조용히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경우도 생겼고요. 더욱이 저를 더 화나게 하는 것은 그녀가 자주 입에 올리는 가족 이야기가 대체 저와 무슨 상관인지 제가 따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고는 코스트코 대용량 과자를 꺼내 제 앞으로 내미는 행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사육당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무례함을 헤아리려 들지 않았지요.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저는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게 되었고, 그녀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지요. 완연한 봄날이었지만 우리 사이는 2월로 되돌아가 있었습니다.
과연 그녀는 둥글어지고 있었던 걸까요? 저는 아직도 모가 나는 중일까요? 혹시라도 제가 그녀라는 도형을 잘못 만져 모가 나게 한 것은 아닐까요? 요즘은 모난 것이 개성이라는 말로도 풀이되는 시대라는 것을 잘 알아요. 이 시대에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옷을 지어 입는 것은 구태의연한 일이라고, 이게 바로 모난 것과 둥근 것 사이 시대를 넘은 통념이라고 말한다면 저의 돌출된 해석인지요.
지금도 가끔 생각납니다. 그녀의 얇은 모시이불 같던 목소리가. 그 목소리로 자신을 칭칭 감아 산꼭대기에서 굴리고 있을 그녀를 위해 돌 하나를 가져다 놓습니다. 모두를 위한 염원 하나를 가져다 놓습니다. 멈추지 않고 굴리다 보면 힘들이지 않고도 이쪽저쪽으로 굴러다닐 날이 오겠지요. 이것이 바로 삶의 굴곡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