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것 같아.
저의 내면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자주 들려옵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어요. 대체로 긍정적인 뉘앙스가 아닌, 견디고 넘어야 할 고비의 순간에 터져 나오지요. 맥박이 빨라지고 머리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면 저는 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아요. 당신에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요. 설마 저만의 속된 경험은 아니겠지요?
이런 순간은 어떻게 찾아오는가,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이제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당신께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증오하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 그는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임종을 앞두게 되었지요. 상황이 그러해도 저는 별로 슬프지 않았습니다. 그의 바이탈이 불안정해지고 비 맞은 장작불처럼 숨이 꺼져가는 순간에 저는 그 이후를 생각했어요. 절을 할 때는 왼손이 먼저 올라가던가? 표정은 담담하게 하는 게 좋겠군. 부고는 누구에게 알려야 할까? 이런 것들이었지요. 그의 영정사진이 제단 위에서 저를 내려다보고 있어도 저는 밥을 먹고 휴대폰을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찾아와 제 어깨를 두드릴 때는 깜짝 놀랄 지경이었지요. 제가 큰일을 치르고 있다는 자각 때문에요. 집안 어른들이 몰려와 곡을 할 적에는 기분은 묘해지더군요. 테이블 모서리에 저를 앉혀놓고 그에 대한 기억을 두서없이 꺼내놓는데, 그 모든 말들이 마음에 들러붙었어요. 그가 좋은 곳으로 가든 말든 저하고는 아무 상관없는데 모두들 결혼식 축사처럼 얘기하더라고요. 각별히 예를 갖춰 맞아야 할 문상객 앞에서는 시선을 아래에 두고 엄숙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지요. 그 사람의 발가락 양말이 저를 보며 웃으라고 하는데 그랬다가는 미쳤다고 할 게 뻔하니까요.
사무실에서는 또 어떤 줄 아세요? 월요일 아침이면 곳곳을 돌아다니며 화분에 물을 주고 주변을 정리 정돈하는 사람이 저라는 사실에 누구보다 놀라는 게 저라니까요. 때로는 집에서 간식을 싸 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요. 저는 이런 사람이 아니에요. 시장에서도 물건값을 흥정하고 음식이 썩어 나가도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을 생각 자체를 못하는 유형이에요. 누가 제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집에서는 저의 냉랭한 말 한마디에 집안 분위기가 얼어붙곤 하지요. 그런데도 사무실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괜찮습니다를 연발하는 꼴이라니 이런 블랙코미디가 없다니까요. 직장을 다니면 다닐수록 이런 증상이 더 심해져요. 당신도 알고 있겠지요.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라고 해봐야 뻔하잖아요. 누군가에게 어필할 생각이 없다면 불필요한 행동이지요.
저는 궁금해져요. 저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들도 분명 알지 않을까 싶은 겁니다. 아, 저 사람이 지금 페로몬을 뿌리며 구애의 짓을 하고 있구나. 그런데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건 저에게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일까요, 아니면 가망이 없다는 시그널일까요.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행동을 계속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을까요.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하나가 있겠지요. 미친다는 게 뭘까. 저도 생각해 보았어요. 겉과 속이 다른 것, 다시 말해 속의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알 수 없는 메커니즘에 빠져 겉으로 전혀 다른 시그널을 보내는 것. 이게 바로 페르소나이자 미친 상태가 아닐까 싶더군요. 어쩌면 미치게 만드는 건 사람이 아니라 상황일지도 몰라요.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고 한다면 제가 그를 그토록 미워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누군가는 낮은 포복으로 기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고, 또 누군가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한다면 누가 누굴 비굴하다고 할 것이며 냉혈하다고 할 수 있겠어요. 이것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손 위에 손을 포개고 한동안 제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영정 사진 앞 집안 어른들처럼 당신과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날이 오겠지요. 그 이야기는 분명 다음 세대는 모르는 우리만 아는 이야기일 거예요. 저는 그 이야기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냥 무해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쪽이든 저쪽이든 편을 가를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으면 좋겠어요. 제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남몰래 속앓이를 하다가 술주정뱅이가 되어버린 일을 제가 진즉에 알았다면 그가 맨주먹으로 유리창을 깨부술 때 그의 어깨 위에 손이라도 올려보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를 가는 대신에 말이에요.
아무것도 모르고 뒤통수를 얻어맞는 일이 없도록 자꾸 이야기를 해주어야 해요. 판단할 수 있도록, 오해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의 뒤통수는 이미 납작하기 때문에 한 번의 일격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요. 사람을 아기처럼 다루는 이야기를 당신과 나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거리에 세찬 바람이 부네요. 이런 날이면 마음도 덩달아 나부낍니다. 나뭇가지에 걸린 한 조각 마음을 고이 접어 당신께 보냅니다. 거기에 쓰여 있는 것이 당신의 마음이자 미래의 우리 모습이겠지요. 당신이 읽어낼 세계가 궁금해집니다. 둥글거나 혹은 모가 났거나. 어느 쪽이든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이 있으니 뭐라도 해볼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