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
어디선가 본 듯한 문구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걸어온 길은 저보다 낫거나 적어도 이런 상황에 놓여본 경험이 별로 없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쉽게 기억나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이 말이 아픕니다. 맞아요, 이건 기간제근로자 근로계약서에 적힌 단서 조항이지요. 우리가 하는 업무란 늘 이렇게 여지를 남깁니다.
어느 해 저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와 맞물려 제 경력 가운데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보건소에서 합격 소식을 받았을 때는 설 연휴가 막 끝날 무렵이었어요. 더는 추위와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우선 기뻤습니다. 채용 공고에는 업무 범위가 명확히 명시되지 않았지만(변수가 많아 사용자 측에서도 업무를 특정할 수 없었겠지요), 컴퓨터를 활용한 업무라고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어요. 면접관이 프로그램 관련 질문을 여럿 한데다가 제 컴퓨터 활용 능력을 다른 이보다 낫게 평가하고 있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요.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네 명의 합격자 가운데 저와 이십 대 청년은 아담하고 조용한 사무실에, 나머지 두 명은 코로나19 상황실에 배정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의 우쭐거림도 생기더군요. 쉰여 명이 근무하는 상황실은 원래 강당으로 쓰던 곳이었는데, 상황이 긴박하여 임시로 사용하게 된 것이었어요. 기존 직원들과 곳곳에서 차출된 파견직들이 한데 뒤섞여 있어 아무래도 어수선하고 말도 많았지요.
저는 예닐곱 명이 근무하는 ‘치매예방실'에서 역학조사를 하거나 재감염자 통계를 내거나 보호자에게 연락하는 일 등을 맡았습니다. 조금씩 변동이 있기는 했지만 크게 다르진 않았어요. 늘 모니터를 보는 일이었지요. 점심시간에는 같은 방에서 근무하는 사람들과 비교적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고요. 상황실 근무자들이 저희 방을 힐끔거리거나 불쑥 쳐들어와 여기는 뭐 하는 곳이냐 시기 어린 질문을 할 적에는 우월감보다는 안도감이 훨씬 컸습니다.
이런 달콤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어요. 저는 두 달 만에 상황실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걸려오는 모든 전화를 일선에서 받는 일이었지요. 처음에는 제가 뭘 잘못했는지 기억을 더듬게 되더군요. 전임자가 그만두는 바람에 제가 건너오게 됐다는 걸 알고 나서야 책상 위의 정리되지 않은 전화선과 발신인명부가 혐오스럽게 보이더군요. 그 자리는 상황실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곳이었어요. 제가 있는 곳을 쉽게 콜센터라고 불렀으니 저는 졸지에 콜센터 근무자가 되었고요.
근무자는 모두 다섯 명이었는데, 이 정도로는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려댔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으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벨이 울렸어요. 점심시간이라고 전화가 오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요. 전화벨이 울려도 아무도 당겨 받지 않았습니다. 사실 얼굴을 보지 않고 하는 말이란 자칫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어느 누가 모르겠어요. 누구도 총알받이가 되고 싶지 않았겠지요.
시간이 갈수록 저는 지쳐갔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불우하게 느껴졌어요. 한 달 후에는 전화벨만 울려도 심정이 두근거릴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지요. 전화를 받다가 경련을 일으켜 병원에 실려 가는 이도 생겼으니 저만의 문제는 아니었어요. 콜(call)이란 무엇일까, 스스로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부름에 응답하는 일이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적개심 가득한 일이 되는 현실이 슬프고도 끔찍했습니다. 존대하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도 견딜 수 없었고요. 모든 것이 부당하게 느껴졌지만 저의 자리는 여전히 출입문 앞 찌그러진 구석 자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점심시간이었는데 마침 상황실에는 팀장과 저 둘뿐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몸이 그쪽으로 움직이고 있더군요. 정수기에서 물을 따르던 그녀가 제게 자리를 비켜주었습니다. 저는 컵에 물을 받으며 업무에 대한 피로감을 토로했지요. 그녀는 간간이 물을 들이켜며 묵묵히 듣더니 제 고충을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인력 배치에 대한 언질을 조심스레 주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가 얼마나 빛이 나 보이던지요. 그렇게 며칠은 힘든 줄도 모르고 지냈지요. 하루하루 그녀를 주시하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더군요. 다시 그녀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팀장님, 지난번 말씀하신 사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 그거.”
그녀의 난처한 얼굴을 보는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습니다.
“다른 부서도 인력이 달려서 당장은 어렵겠어요.”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오더군요.
“팀장님.”
저는 참 무모한 사람입니다. 멈춰야 할 순간에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아요.
“아실지 모르겠는데 걸려오는 전화 절반 이상 소정 씨랑 저랑 받고 있어요. 다들 벨이 울려도 딴짓하면서 안 받는다고요. 소정 씨가 괜히 쓰러진 게 아니거든요.”
“알아요. 아는 데 상황이 그렇다니까.”
그녀의 얼굴에 짜증이 묻어났습니다.
“소정 씨는 정식으로 채용된 것도 아닌데 이 정도 일했으면 교체해 주실 만하잖아요.”
퍽 친한 사이도 아니면서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요. 소정은 공공일자리 참여자였는데, 이런 경우 보통은 약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힘들고 고된 일에선 제외되었어요. 그런데도 소정이 불평 한마디 없이 일하는 것에 마음이 쓰이던 차였지요.
제가 팀장의 심기를 건드린 게 분명했습니다. 손톱을 문지르던 그녀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로 저를 올려다보더군요.
“이봐요.”
또 이봐요군. 저는 속으로 생각했어요. 다음은 단단히 각오해야 했지요.
“누가 쓰러졌건 말건 다른 사람 얘기할 거 없어요. 본인 얘기만 하라고요, 본인 얘기만.”
꼭꼭 씹으며 말하는데 그 순간 저 혼자라면 말이 통할까 싶더군요. 저는 또 정중히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인간은 학습하는 동물이니까 몇 달 전과는 저도 달라졌지요. 그렇게 며칠이 지나는 사이 소정은 병원을 들락거리다 다시 출근하지 못했습니다. 그 바람에 저는 더 많은 전화에 시달려야 했고요.
곧 저도 일을 그만두고 다른 곳에 석 달짜리 계약직 자리를 얻었어요. 같이 채용된 복순은 원래 기대했던 일이 아니라며 중도에 그만두었고요. 복순의 자리는 정순 씨가 메우게 되었는데 사람이 바뀌어도 달라진 건 없었어요. 우리가 하는 일이란 대체 가능한 일이고, 대체품은 어디든 널려 있으니까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 이 얼마나 포괄적으로 사람을 옥죄는 말인지. 이 얼마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말인지.
계절이 바뀌고 있습니다. 달아나는 계절과 다가오는 계절이 맞물리듯이 사람도 이처럼 왔다 가면 좋겠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은 자연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지요. 배웅하고 마중하면서 한 계절을 일 년처럼 살고 싶어요. 떠나가는 것이 아쉽지 않도록, 다가오는 것을 환대할 수 있도록, 말이 아닌 시간을 씹으면서 오감으로 느끼고 싶어요.
어느덧 당신과의 시간도 깊어가고 있네요. 다음에는 좀 더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겠어요. 제가 먼저 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당신은 서두르지 말고 듣고 보고 만지며 천천히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