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을 못한다는 게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건 꽤나 커다란 문제다. 받아들일 수 없는 부탁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싫다는 표현을 못해서 억지로 받아들인 부탁은 점점 쌓여갈수록 자신을 지치게 만들고, 나중에는 거절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될 수도 있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착한 아이 증후군이 유일하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은 거절하는 법을 연습하자.
거절하기 연습 첫 번째. 시간 끌기
언뜻 보기에 '이게 무슨 거절하기 연습이냐'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한 이 방법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시간 끌기'를 정확히 설명하자면, 부탁을 받은 경우 대답을 바로 하게 되는 상황을 피하라는 거다.
착한 아이 증후군의 경우, 안 그래도 거절하면 미움을 살까 봐 거절을 하지 못하는데, 부탁을 받는 상황에서 그 사람의 간절해 보이는 표정과 목소리는 더욱더 거절하지 못하게 만든다. 거기에 더해 그 사람이 계속 대답을 요구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상황이 되는지 안되는지는 생각도 안 하고 알겠다고 해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하는 것을 삼가고, 일단 "생각해 볼게요"또는 "상황을 보고 말해줄게요"와 같은 멘트로 시간을 끌어라. 바로 "안 돼요"가 나오지 않는 착한 아이증후군에게는 거절보다 조금 덜 부담되는 방법이다.
원래는, 저 멘트를 할 때의 목소리와 표정, 분위기 등을 보고, 상대방도 어느 정도 거절의 의사표현이라는 것을 눈치채기 마련이다. '예의상 하는 말'이라는 표현을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가장 흔한 예로는, 지나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지금은 연락 안 하는 예전 친구와 잠시 가벼운 대화를 나눈 뒤, 헤어질 때 하는 "언제 밥 한 번 먹자~"가 있다. 이때 둘 중 누구도 그 '언제'를 기다리지 않는다. 저 멘트는 그저 "안녕 잘 가"를 대신한 말이고, 상대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각해 볼게"를 거절의 의사로 전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간혹, 정말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뿐더러, 평소 거절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 당연히 승낙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잠시 시간을 번 틈을 타, 내가 정말 할 수 있는지, 상황은 되는지 잘 생각해 본 다음 되도록 빠르게 거절 또는 승낙을 전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상대도 부탁할 다른 사람을 알아볼 수 있고, 당신도 대답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팁을 주자면, 처음에는 거절이라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을 것이므로, 얼굴을 보고 거절하는 건 더욱 어려울 수 있다. 조금 예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 몰라도, 톡으로 거절을 표하면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다.
거절하기 연습 두 번째. 거창한 이유를 생각하지 마라
거절을 해야 할 경우, 반드시 상대가 납득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보통 거절하거나 부탁할 때의 모습을 보면
"죄송합니다 제가 그때 일이 있어서요"
"아이고 미안해 선약이 있어서"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요.."
"미안한데 이거 내가 가져가도 될까? 정말 꼭 필요한 거라.."
"죄송한데 제가 먼저 해도 될까요? 제가 지금 너무 급해서요"
이런 식이다. 잘 보면, 위의 예시 중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저 이유를 받아들이지 못할까?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리뭉실한 저 이유 아닌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지 않고 받아들인다.
중요한 건 '이유가 있다'지, '내가 납득할 수 있을만한 이유여야 된다'인 것은 아니다.
그냥 알아서 '피치 못 할 사정이 있구나~'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간다.
그러니 너무 완벽한 이유를 생각하려고 애쓰지 마라. 완벽한 이유를 찾으려는 모습의 내면은, 상대가 듣기에도 '이건 정말 어쩔 수 없겠다. 이 사람은 내 부탁을 정말 들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해서, 미움받을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나의 방어기제일 확률이 높다.
아, 그리고 여기에도 팁을 하나 주자면, 만약 이유에 대해 정말 집요하게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이 있거든, 그냥 그 사람을 걸러라.
어떻게든 몰아붙여서 궁지에 몰아,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이기적인 사람일 확률이 매우 높다. 애초에 이 사람들은 당신의 이유 같은 건 안중에 없다. 당신을 두고두고 힘들게 할 사람을 끌어안고 갈 이유가 있나?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다. 그러니 소중하게 대해주어라. 힘든 상황에 자신을 집어던지지 마라. 누가 뭐라 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내편은 내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 세 번째. 우선순위를 정하라
우선순위. 말 그대로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것을 정해놓으면 거절이 한결 쉬워진다.
우선순위에 대해 잘 모르겠다면 크게 카테고리를 만들어 보아라.
가족, 연인, 취미, 학업, 일, 운동 등등 이 밖에도 개인에 따라 다양하게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가족을 우선순위로 정했다고 해보자.
자, 가족과의 식사 약속이 있는 날 친구가 알바 대타를 부탁해 왔다. 어떻게 하겠는가?
가족을 우선순위로 정했기 때문에,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거절이다. 되고 안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가 가족이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
우선순위란 그런 것이다.
자 그럼 이번에는, 오늘은 오랜만에 느긋하게 영화나 한 편 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친구가 알바 대타를 부탁해 왔다.
이번에는 어떻게 하겠는가?
이번에는 당신의 자유다. 거절한 다음 계획대로 영화를 봐도 되고, 영화 보는 게 딱히 중요한 게 아니라면 친구의 부탁을 들어줘도 된다.
이렇게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만으로도, 무조건 거절을 해야 할 상황인지, 들어줘도 괜찮은 상황인지가 1차적으로 걸러지기 때문에, 고민하게 되는 상황이 많이 줄어든다.
오늘의 글은 여기까지다.
한 마디만 더 하자면, 이 모든 것을 다 지키고 최대한 부드럽게 거절을 해도, 날카롭게 나오는 사람은 있을 수 밖에 없고, 거절했다는 이유로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이 책임져야 할 문제도 아니다. 내면이 건강한 사람보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 그들의 각진 부분으로 인해 상처받지 말아라. 그들의 문제는 그들의 몫으로 두어라. 나 자신을 지켜주어라. 그들이 나에게 갖는 미움은 내 삶에 아무 영향도 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라. 미움받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