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도망자 04화

도망자의 이혼, 그리고 그 결말

by 온결

이혼을 앞둔 나는, 아직 기저귀도 떼지 못한 어린 아들이 있었다.
명절을 앞두고 가족들에게 이혼하겠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운명처럼, 명절 날 어머니가 등산 중 낙상사고를 당하셨고, 의식불명 상태가 되셨다.
길어지는 수술 시간, 의사는 뇌출혈이 심해 의식을 되찾더라도 반신 마비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순간에도 아버지는 당시 진행 중이던 일이 있으셨는지, 의식 없는 어머니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여튼 네 엄마는 도움이 되는 게 없어.”
그리고는 3남 1녀 자식들을 앉혀두고선,
“병원비 댈 돈이 없으니 차를 빌려서 엄마랑 같이 죽을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내 생각이지만, 아버지는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와 그 무게를 자식들에게 지우고 싶지 않아서 그러셨던 건 아닐까…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말이 너무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어머니는 긴 수술 끝에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간병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말했다.
자신은 일하느라, 큰오빠는 빚 갚느라, 한 동생은 지방에서 일하느라, 막내 동생은 학교 다니느라 모두 바쁘다고.
결국, 나에게 어머니를 돌보라고 했다.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간호하라는 말이었다.

의식 없는 엄마 곁을 아무도 지키고 싶어 하지 않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그 순간이 마치 악마의 얼굴을 보는 듯했다.
그렇게 예뻐하던 손자이자 조카였던 내 아이였는데…

하지만 나는, 그들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까지 어머니를 외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린이집에도 가야 하고, 밥도 먹여야 하고, 잠도 재워야 하고, 기저귀도 갈아야 하는, 아직 통제가 어려운 아이였다.
그런 아이를 데리고 중환자실에서 간호를 한다는 것도,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사랑하는 아이를 지킬 수 없었다.
지킬 수 있는 상황도, 능력도, 용기도, 온전한 마음조차 내겐 없었다.

미련하게도, 이혼만 하면 모든 게 내 생각처럼 될 거라 믿었다.
아이 역시, 어머니 간병이 끝난 후 다시 내가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친권과 양육권을 내어주면 이혼해주겠다’는 그의 말에, 너무나도 쉽게 서명해버렸다.
나는 그렇게 중요한 선택 하나에도 신중하지 못했던, 내 인생을 휘둘리듯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눈빛조차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결혼 생활.
어쩌다 스치기라도 하면 내 살을 도려내고 싶었던 결혼 생활.
습관처럼 내 불행을 말하고, 입버릇처럼 '결혼은 미친 짓'이라 노래하던 그 시간.
더는 만들, 상처조차 없는 결혼 생활.
아이의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가정을 지키고 싶지 않았고, 남은 내 삶을 희생하고 싶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별거하듯 살던 결혼 생활, 사랑 없이 부모로서 의무만 다 하던 결혼 생활,
그런 가정이 아이에게도 좋을 리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고로 인해, 결국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었고,
그 선택의 책임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사실, 나의 고통보다 나의 선택으로 인해 아이가 겪었을 고통이 더 컸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이혼한 남편은 나를 향해,
아이를 버린 사람이라고,
그냥 낳았을 뿐인 아줌마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말들에 상처를 받진 않았다.
사랑 없이도 어떻게든 가정이라는 울타리만 지키려는 그에게서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고, 그의 어린 시절 상처를 알았기에 그의 말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오랜 시간 아이의 꿈을 꿨다.
꿈속에서도 아이는 도망치듯 내 곁을 떠났고,
나는 아이를 붙잡을 수 없었다.

나는 꿈에서도 토해내듯 눈물을 쏟았고,
꿈에서 깨어나면 아린 가슴을 움켜쥐고 한참을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참 오랫동안 내 생각 속에 사로잡혀 있었고,
내 입장을 말하지도, 말할 줄도 몰랐던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내 감정을 설명하기보단 감정적으로 행동하며 스스로 상처를 만들고 키우던 사람,
주변에 휘둘리며 살아온 사람,
내 인생 하나 책임지지 못해 의지할 곳만 찾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의 짐을 싸서 아이의 눈물을 뒤로한 채 남편의 품에 안기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사건의 결말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어머니의 회복 속도는 빨랐고, 사고 당시 함께 계셨던 친지분들과 어머니가 미리 모아두셨던 돈 덕분에 간병인도 쓸 수 있었다.
걱정과 불안 속에서 인간의 흑과 백을 경험했던 그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나는 어머니의 퇴원을 함께했고, 짧은 기간이지만 간병과 병원 방문을 도왔다.

어린 시절, 이혼, 어머니의 사고,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들까지… 그 시절은 내게 너무나도 가슴 아픈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참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기도 했다.

나의 이혼 전 결혼 생활에 대해서도, 이혼에 대해서도, 아이에 대해서도 글에 담지 못한 일들이 참 많다. 그리고 용기가 없었던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며 나를 바로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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