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장 큰 사건이었던 두 번의 도망은, 내가 더는 도망치지 않고 그 문제와 마주했을 때 비로소 의미가 되었다.
아픔과 고통이 따랐지만, 그만큼 나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고, 결국 단단한 인생의 거울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되어주었다.
ㅡ첫번째 도망.
자유 없이 살았던 나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감정에 휘둘리며, 매 순간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던 시간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아버지의 기억은, 내 인생에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동시에, 가장 큰 배움을 안겨준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 부모가 된 지금, 그 기억들은 단지 과거의 아픔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상처의 흔적은, 부모님의 모습이 나에게서 발견될 때마다 나를 멈추게 한다.
그리고 바로잡는다.
마치 문제 앞에 정답지를 펼쳐보듯,
그 기억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기준이 되어주고 있다.
ㅡ 아이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미안함
사실, 도망치듯 살아가던 내 삶을 써내려가면서
이혼 후 아이 아빠의 재혼 가정에서 살게 된 내 아이가 떠올랐다.
어른들의 선택으로 상처받고 고통을 겪었을 아이.
면접 교섭이 가능했을 당시,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아이에게
당연히 물어봐야 했던 안부조차 직접 묻지 못했다.
어쩌면, 아이의 아픔을 듣게 되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
감히 물어보지 못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희망적인 말’이라는 이유로
밝고 좋은 이야기, 감사의 말만
길게 늘어놓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먼저 아이의 마음을 물어봤어야 했고, 알아줬어야 했다.
나는 그 아이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언젠가는 만나게 될 내 아이.
나 역시 재혼 후 아이가 생겼고,
그 아이에게는 아주 어릴 적부터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에겐 형이 있어.
형 이름은 ○○이고,
우리가 언젠가 만나게 되면 보고싶었다며, 꼭 안아주자" 라고 말하곤 한다.
그리고 나는 늘 생각했다.
아이가 나를 만나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내가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수없이 고민하고 또 생각했다.
아이 아빠와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써 내려가다 보면,
결국 그 이야기는
아이에게 아빠에 대한 미움을 심어주는 말이 되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어떤 이유에서든, 결국 우리는 떨어지게 되었고,
내가 아무리 마음을 전한다 해도
그 모든 말들이 아이에겐
그저 구구절절한 핑계로 들릴 것 같았다.
나는 이 글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것일까.
단지 나의 글이 누군가를 향한 비난이나, 자책을 담는 글은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길게 써내려가던 글을 모두 지우고,
나를 바라보는 내 입장을 다시 써본다.
- 다음화에 이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