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두 번째 도망.
이혼 전, 그 당시의 나는, 상대를 이해하기보다는 나의 아픔에만 빠져 있었고,
그렇게 나 스스로 내 상처를 키워가고 있었다.
나에게 지옥 같던 그 결혼 생활은, 상대 또한 결코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벅찬 시간이었지만, 부부로서 회복하기 위한 노력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미숙함은 서로를 더 멀어지게 만들었고,
오해는 쌓이고, 굳어졌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할 수 없게 되었고,
웃음을 잃었으며, 함께 있는 공기마저 숨 막혔다.
나는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혼을 결심했다.
이혼만 하면, 내 인생이 달라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왜일까.
이혼 후에도 나는 여전히 불행했다.
ㅡ 도망자, 이젠 그 길 위에 서다
재혼 후에도 나는 비슷한 이유로 남편과 자주 다투었다.
반복되는 마음의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국 나는
“평생 혼자로 살아야만 진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극단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그때는 그것이 해결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해결이 아니라, 고통을 견디지 못해 도망친 회피였고,
문제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나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도망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나는 진짜 변화를 결심했다.
상대를 바꾸기보다 나를 먼저 들여다보기로 했고,
그 불안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려고 수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내 마음 안에서 그 문제와 맞서야 할지조차 몰랐고,
그 과정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나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같은 인생을 반복하게 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와 마주하며 문제를 풀어온 시간이
벌써 수년이 흘렀다.
결국 결혼 생활 속에서 반복되던 나의 고통은,
‘믿음’의 문제였다는 것을 이제는 깨닫게 되었다.
나는 믿지 못했다.
남편에게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가 언젠가 나를 떠날까 봐 불안해했다.
그 불안 때문에, 나는 언제나 남편이 예측 가능하고 믿을 수 있는 범위 안에 있기를 바랐다.
그렇지 못한 순간이 올 때마다, 다시 불안해졌다.
진심을 다해 조심스럽게 마음을 열면서도,
‘내가 이렇게 마음을 보여준 뒤에 그의 마음이 변한다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은 더 커졌고,
결국 나는 그를 완전히 믿지 못했다.
내 마음속 불안을 그를 통제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렇게 하면 안심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통제해도
내 안의 허전함과 채워지지 않는 마음은
오히려 관계 안에 또 다른 벽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생긴 내 불안은
상대가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남편이 언제나 내 곁에 머물며 나를 안심시켜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가 애써 만든 안전함은 결국 잠시뿐이었다.
해결되지 못한 나의 불안은
끊임없이 새로운 이유를 만들어내며 반복되었고,
결국 나는 이 문제는 남편이 아닌,
오직 나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이런 문제는 나의 연애와 결혼 생활 속에서도 반복되어 왔다.
불안에서 비롯된 나의 생각을 ‘오해’가 아니라 진짜 사실이라고 믿었고,
그로 인해 기분이 좋았다가도
순식간에 감정이 상해버리기 일쑤였다.
그런 내 기분 변화의 이유를 묻는 상대에게,
정리되지 않은 내 감정과 생각은
결국 비난처럼 들렸을 것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그래서 불안이 물밀 듯 밀려와 나를 덮칠 때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와
결국 싸움으로 번지곤 했다.
그 반복 속에서,
내 불안은 이해받지 못했고,
그럴수록 나는 상대를 더 믿을 수 없게 되었으며,
결국 점점 마음의 문을 닫게 되었다.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ㅡ 도망자, 내 안의 나와 마주하다
얼마 전의 일이다.
퇴근 후나 쉬는 날, 남편이 혼자 외출하는 일은
대부분 집에 떨어진 식재료를 사러 마트에 가는 정도다.
내 일이 바쁘거나, 신경 쓰지 않을 때는
남편이 나갔다가 언제 돌아왔는지도 잘 모를 때가 있다.
하지만 남편이 돌아오는 시간을 의식하게 되는 날이면,
나의 기다림은 유독 길고 무겁게 느껴진다.
그럴 때면,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왜 이렇게 늦지?’
‘무슨 일 있는 걸까?’
‘누구랑 연락하는 건가?’
‘혹시 누굴 만난 걸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나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상상해낸다.
평소에도 남편이 참 많이 애쓰고 노력한다는 걸 잘 알기에,
그에 대한 신뢰와 믿음도 분명 마음 안에 자리하고 있지만,
불안이 올라오면 그 믿음은 너무도 쉽게 흔들린다.
불안에 잠식된 감정은
어느새 내 표정과 말투, 행동으로 드러난다.
장을 보느라 수고한 남편에게
웃으며 “고마워”라고 인사하면서도,
그 뒤에 이어지는 나의 태도는 차갑기만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남편이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라며 조심스럽게 물을 때도 있었고,
혹은 내가 감정에 휩싸여 먼저 말을 꺼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면,
내 안에서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꺼내는 순간
나는 또다시 싸움을 시작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일이 한참 지나고 난 후,
나는 남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때, 내가 그렇게 말할 때… 당신은 어떤 감정이 들었어?”
남편은 망설임 없이 이렇게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이 사람은 나를 믿지 않는구나.’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믿음과 신뢰를 줄 수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서운했고,
동시에 참 허탈하고 공허했어.”
그 말을 들은 나는 그제야
그 순간, 그의 마음에 어떤 감정이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사건 당시의 나는,
남편의 감정 호소조차 비난처럼 들렸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내 감정이 이해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 순간,
내 마음은 짓밟히는 것처럼 아팠고,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깊이 빠져들곤 했다.
그리고 내가 서운해서 했던 말들조차
왜 이렇게 비난의 말로 돌아오는지 알 수 없었다.
점점 대화는 방어와 오해의 말들로 가득 찼고,
그럴수록 나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ㅡ 도망자, 내 마음과 마주하고 용기를 내다
나의 불안한 감정이 요동치며
머릿속에 별별 상상과 걱정을 만들어내던 어느 날,
나는 자꾸만 나를 불행으로 끌고 가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멈추고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작은 결심이 일었다.
이번만큼은, 내 감정을 제대로 전달해 보자.
비록 서툴더라도,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꼭 해보고 싶었다.
충분히 생각을 정리한 후,
나는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사실 걱정도 됐다.
혹시라도 남편이 자신을 탓한다고 오해하면 어쩌나,
내가 큰 결심을 하고 용기 낸 순간이 괜한 싸움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도 이 결심은 첫 시도이자 도전이고, 성장의 길이라는 생각으로
표정부터 의식적으로 환하게 밝히며 말을 꺼냈다.
“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그런데 이건 절대로 여보를 탓하거나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게 시작된 대화.
나는 내 감정과 생각을 설명하듯이, 조심스럽고 친절하게 말로 풀어나갔다.
나의 말 끝에, 남편은 특별한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괜찮았다.
내 생각이 오해라는 것을 밑바탕에 둔, 나의 첫 도전과 용기에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다.
말을 마친 후, 나는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내 말 중에 불편하거나 감정 상한 부분은 없었어?”
남편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고,
그는 내 말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이 참 고마웠고,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늘 머릿속에서 부풀기만 하던 불안과 의심.
그 감정과 마주하고,
그것을 상대의 탓이 아닌 ‘나의 이야기’로 말해낸 이 첫 연습은
나에게 큰 용기이자,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나는 나 자신이 참 대견했고, 뿌듯했다.
- 다음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