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생적으로 겁이 많은 아이였다.
초등학교 입학식날은 눈에서 한시도 엄마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운동장에서도 교실에서도.
교실에서 내 인생 첫 담임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에도
나는 자리에서 얼어붙어 일어나지 못했다.
엄마 손에 이끌려 겨우 앞으로 나갔었다.
엄마는 그런 내가 익숙했지만, 그때 웃고 있었지만
부끄러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입학식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울고 싶었다.
낯설었고 너무 넓은 세상에 갑자기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달까?
어리고 조그마한 것이 뭘 안다고 그런 생각을 했겠어, 하겠냐마는
분명하다. 그때 나는 울고 싶었고 두려웠다.
태생의 기질을 어쩌지 못하는지라 나는 오래도록 벌벌 떨며 살았다.
누구에나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내 어릴 적에는 수업시간에 일어나서
책 읽기를 시키는데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해 박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한 글자도 읽지 못했다.
엄마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인형만 가지고 혼자 노는 나를 걱정했었다.
친구들을 대신 불러 놀게 해 줘도 엄마가 안 보이면 몰래 다른 방으로 가서
혼자 놀 정도였다고 하니 혹시 문제가 있나, 하고 생각하셨다더라.
지금의 나로 빗대어 얘기해 보자면
(엄마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나는 그냥 그게 편했던 거다.
특별히 누군가 있는 게 더 재밌지도 않았던 거다.
지금의 나로 확답하자면
나는 '누군가'를 선호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애였다. 겁 많고 혼자이기를 자처하는.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집안에 약간의 혼란이 오고 나서
나는 문득 '이제부터는 이렇게 살면 안 돼!'라는 이상한 정체성을
확립하고 스스로에게 주입시켰다.
무섭지 않은 척, 뻔뻔한 척, 사람 좋은 척, 사람을 좋아하는 척,
친절한 척, 괜찮은 척, 어른인 척.
되지도 않는 척은 다했던 것 같다.
그런 가면을 쓰고 오랜 시간이 지나니 그게 나인줄 알았다.
정말 나인줄 알았다. 그 가면 밑으로 썩어 들어가는 나를 몰랐다.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결국 나를 찾았을 때,
나는 아직도 겁 많고 혼자이길 좋아하는 나를 이제는
그대로 이해해 보기로 했다.
이 거친 세상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도 살아낼 수 있도록.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누구도 나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할 거라는 알았다.
내가 나의 행복을 우선에 두지 않는다면
누구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거란 걸 알았다.
사람이 많아도 오랜 시간을 외로웠다.
사랑을 받아도 채워지지 않아 되려 상처 준 적도 많았다.
나는 가면을 쓰고도 더 겁쟁이 짓을 한 거였다.
나를 외면한 것이 가장 비겁한 짓이었다.
나는 아직도 겁이 많고 잘 울어내고는 한다.
그리고 여전히 혼자인걸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못하는 게 더 많고
나를 다독여야 하는 시간이 많지만.
두렵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버티고 나아가고, 버티고 나아지고
버티다 보면 살아지고. 살아내는 거겠지.
그리고 나는 분명 내가 빛날 거라고 믿는다.
이 믿음이 나를 향한 가스라이팅이던 합리화이던
마치 누군가의 신앙처럼 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나는 '잘'나지도 '빛'나지도 않지만
결국에는, 끝내 참 잘 빛나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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