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지심 - 엄마가 내게 주신 가장 큰 유산
나는 마음이 약하다.
다시 말해,
타자의 아픔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다.
내가 선하고, 착해서가 아니라
맹자의 ‘성선설-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들이 어릴 때부터
꽤 많았던 것 같다.
크게 사고를 당했거나
버림받은 강아지가 보이면 집으로 데려오는 것,
무거운 물건을 들고 지나가는 어른들을 보면 달려가 도와드리는 것,
추운 날 술에 취해 잠든 사람이 있을 땐
경찰에 신고해 귀가시키는 것,
울고 있는 전학생 옆에서 위로해 주다
나도 함께 울어주었던 것.
오지랖이 넓었던 것 같기도 하고,
측은지심이 유별날 만큼 많은 아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측은지심으로 시작된 나의 행동이
또 다른 사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 또한 번거로운 일은 최대한 외면하며 살게 되었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뺏기는 일,
무언가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책임지는 일, 타자를 위해 희생하는 일 등등.
가끔은 마음 쓰는 것보다, 돈을 쓰는 쪽이
덜 손해라는 얄팍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계곡에서 잡아 온 다슬기를
끓는 물에 넣던 엄마를 보며,
잔인하다고 울어버린 조카들의 순수함과,
상추에 묻어 나온 달팽이를 키우자며
떼쓰던 사촌동생의 소박한 바람이
나와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서울로 상경해,
어느덧 시골 학생의 티를 벗고
표준어를 흉내 내던 시기였다.
높은 빌딩들 틈에 끼어있던 아늑한 집이었지만 나에게는 서울살이 첫 집이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쓸고 닦았다.
현관 입구부터, 침대 아래, 부엌 창틀과,
화장실 환풍구까지.
청소를 하던 중 어디선가 물 내려가는 소리가 꼬로로로록, 꾸루루루룩 나는 것을 느꼈다.
‘아뿔싸! 물 새는 곳이 있나 보다.
어쩌지?
화장실 배관인가?’
소리를 쫓다가 발견한 것은 바로
비둘기였다.
‘으악!’
무섭지만 창틀 이곳저곳에 똥 범벅을 하거나, 털이 휘날릴 것이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쫓아내야 했다.
손이 닿지 않는 깊은 곳이라 긴 막대와,
행방을 확인할 수 있는 반사 거울을 챙겨서 무단침입자 퇴치 소동을 벌였다.
긴 막대로 겁을 주며 휘휘~ 내저었더니
푸다닥 거리는 소리와 함께
큰 비둘기가 반대편 지붕으로 날아갔다.
퇴치 성공!
하지만 반사 거울로 아래를 비추어보니
담벼락 창문 아래에
갓 태어난 새끼 비둘기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칼바람 매서운 겨울이었기 때문에,
보일러 온기를 따뜻하게 느낄 수 있는 곳에
터를 잡은 듯했다.
나는 눈도 못 뜬 상태에서 겨우 버텨내고 있는 비둘기 가족을 차마 쫓아낼 수 없었다.
‘마음 약하다는 거 소문났나…
비둘기 떼까지 몰려왔네…
날 풀려서 따뜻해질 때까지만 받아줘야겠다!!’
라고 혼잣말을 하며,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딸의 새 터가 궁금하셨던 부모님은
갑자기 서울로 상경하셨다.
도착하기 전, 다른 건 걱정되지 않았지만 비둘기를 쫓아내실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황금 박 씨 물어주는 흥부 이야기도 아니고, 추위에 떠는 비둘기가 불쌍해서
집 한편을 내어준다는 건
어른들의 세상에선 이해되지 않는 소리니까.
비위생적이고, 시끄럽고, 번거롭기에
내가 생각해도
나에게 득 될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어머니께서 창문으로 비둘기를 마주하셨는지
화들짝 놀라는 소리가 났다.
“어머 어머머!”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큰일 났다…
비둘기 가족아… 잘 가….
무사히 겨울나길 바랄게…'
작별인사를 준비하던 중
예상치 못한 어머니의 혼잣말이
내 귀를 스쳤다.
“비둘기야 안녕! 잘 잤어~~?”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지만
곧이어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우리 엄마야!!!!!!'
문득, 우산이 없는 어른을 마주했을 때,
어머니의 우산을 타인의 손에 쥐어주며
추적추적 비를 맞고 걸어오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그녀와 나의 닮은 점이다.
우리는 실용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실리를 따지느라
주변 사람들의 눈물을 지나치거나,
그들의 필요를 못 본 체하지 않았다.
타인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애정이 가끔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앗아간다 할지라도
나는 이 따스함 또한, 우리의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측은지심은,
엄마가 내게 주신 가장 큰 유산이다.
- 이또숙 여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