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엄마로만 보지 않는 법
보수적인 경상도 집안의 맏며느리 이또숙 여사님.
오랫동안 어머니의 일복? 넘치는 삶을 지켜봐 왔기 때문일까,
우리 집엔 5남매 모두가 효녀이자 효자다.
나는 효녀 축에도 끼지 못하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 있다.
어머니께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년시절의 꿈을 독려하는 일.
간절히 바라셨던 배움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드리는 일.
아!
한 가지를 더 보태자면,
연휴 날 ‘억!’ 소리 나게 쌓이는
설거지 거리를 도와드리는 일도 포함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설, 추석 연휴가 되면
친척들은 우리 집으로 모인다.
다 같이 연락해서
한 번에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는 손님이 올 때마다
한 상 가득 차리고, 다과를 대접하고
설거지하는 일을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그것을 보고만 있는 것이 힘들어서
20대 이후로는 친구 만나러 나가는 것을
뚝! 끊고 집에만 있었다.
설 연휴에 미국 학회가 잡혀서 빠졌던 것 말고는
단 한 번도 명절을 고향에서 안 보낸 적이 없는데 약 5년 전 처음으로 불가능을 경험했다.
코로나로 인해 언론과 지역사회에서
자녀들을 고향으로
못 내려오게 해야 된다며
통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 역시 불안함과
걱정스러운 마음이 컸는지
고향 가서 어머니를 돕겠다는 나의 고집을
꺾고, 끝내 못 내려오게 하셨다.
하지만 민족 대명절인 연휴에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
사실상 출. 퇴근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고향을 내려갈 수 있게 되었고,
아버지는 친구에게 받았다며
갑자기 와인 한 병을 꺼내셨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분위기 잡는다며 와인을 종류별로 마시고
현관에 와인병들을 진열해 둘 정도로 와인을 사랑한 나였지만,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못 드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위해 좋은 곳 모셔가고,
좋은 것 함께 먹자 다짐해 놓고
정작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부모님도 좋아하실 거란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와인을 안 드시는 것은 물론이고,
고향 집에 와인잔조차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나 - “엥? 우리 집에 이렇게
고급스러운 와인잔이 있었어요???”
엄마 - “엄마 시집올 때 사온 거니까
그게 40년 넘은 건데 처음 쓰네!!!!”
나보다 나이 많은 와인 잔으로,
아빠 엄마의 결혼 40주년을 추억하고 회상하며 즐겁게 저녁을 먹었다.
평소 주변인들에게 와인을 선물하던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께 포도즙 한 번 건네 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갑자기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천하를 살피는 사람,
내 발아래 등불 못 보는 격이었다.
아버지는 가끔 우리가 고향 내려갈 때,
맥주 한 잔, 막걸리 한 잔을 즐기셨지만
어머니는 평생 동안 술을 식도로 넘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셋째 언니가 독도로 여행 모시고 갔을 때,
'울릉도 막걸리' 한 잔 드셨다가 어지럽다며 쓰러지듯 잠드셨다는 소리를 듣고
엄마는 술 드시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집올 때 가져왔다던 와인잔을
40년 만에 처음 사용하던 그날,
어머니는 와인 한잔을 입에 머금으셨다.
태어나서 처음 맛본다는 와인을 음미하시다가 향이 풀잎 향 같고 좋다며 소녀처럼 기뻐하셨다.
그날 나는, 내가 하고 있는 많은 판단들이 잘못되었음을 자각했다.
‘우주에 살아있는 모든 것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움직이고 흐르면서 변화한다.’는
법정스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우리 어머니는 변했다.
아니, 변화하고 있다.
10년 전에 내가 알던 우리 어머니는
눈 옆에 깊어진 주름만큼이나
지혜 또한 깊어졌고,
입맛, 취향, 성향, 가치관,
신체적 나이 또한 변하고 있었다.
이 날 이후 나는 생각했다.
한 사람의 인간존재를 안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현재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이다.
묻고, 또 묻고, 계속해서 살펴야 한다.
심리학적 성장 과정에서 엄마를 나와 같은 인간으로 인식하기 위한 3단계가 있는데,
그중 첫 번째는 어머니의 생애사를
상상하거나 탐색하는 일이라고 한다.
요즘 주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와 용건만 나누는 관계가 된 것 같다.
엄마는 어떤 꿈을 품고 살았는지,
무엇이 삶을 가장 외롭게 만들었는지,
외할머니와 어떤 추억을 갖고 있는지 등등..
무용하고 무가치한
질문을 나누지 않는
건조한 사이가 된 것 같다.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여성'의 존재로
다시 인식하기 위해,
더 많이 질문하고,
마주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