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4. '용서와 이해'

용서는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미래를 넓게 열어준다.

by 이또숙


'용서와 이해, 그리고 시간'





[ 우리 넷째 딸은 욕심이 많았다. 배움의 욕심. 그런데 다른 아이들에 비해 너무 왜소했다.

사소한 집안일조차 시키기 안쓰러웠던 딸이지만 다행히 특별한 재능도 많았다.

노래나 무용도 잘했고, 교우관계도 좋아서 늘 친구들을 배려하는 그런 딸이었다.

엄마의 어깨를 으쓱하게 하는 자랑스럽고 귀여운 딸.


어느 날 학예 발표 연습을 열심히 하던 넷째 딸의 학예 발표 날이었다.

일에 쫓겨 미처 한복을 준비해주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무대는 오를 수 있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허겁지겁 도착해 보니 의상 때문에 우리 아이만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결국 소홀했던 나 때문에 아이가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것들이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지, 혼자 아쉬워하며 무대만 하염없이 바라봤을 딸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미안하다.



이또숙 여사님 글 中 ]





‘의상 학예발표’라는 제목을 붙여놓은

엄마의 일기를 보고 내가 물었다.



나 : “이런 적이 있었어요?”


엄마 : “응. 엄마가 그때 이후로 너무 미안해서,

네가 하는 모든 공연이나,

행사는 무조건 일 안 하고 다 쫓아갔지.”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가 아직도 엄마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타임머신이 주어진다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우리 엄마가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게 한복을 챙겨주어,

무대에서 멋지게 춤 솜씨를 뽐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을 것이다.


나에게도 너무나 후회스러운 순간,

어쩌면 나만 아프게 기억하고 있을 엄마에게 미안한 순간들이 있다.


대부분 중학교를 다니던 사춘기 때의 일이다.


어느 날, 20만 원이 훌쩍 넘는 값비싼 고데기(전기머리인두)를 친구에게 받아왔다.

손잡이 부분이 부서져서 테이프로 고정해서 쓰고 있긴 했지만 고치는 비용이 비싸지 않았다.

주말에 고쳐서 깨끗하게 써야지 생각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 할 때 쓰는 미용기기 못 봤냐고 어머니께 여쭤봤더니,

"부서졌길래 버렸는데?" 라며 깜짝 놀라셨다.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몰라하시는 어머니께

그 비싼 걸 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화냈던 기억이 아직도 날 아프게 한다.


두 번째는 부모님을 창피하게 여겼던 순간이다.

작업 차량 (트럭)으로 나를 학교 앞까지 바래다주시던 어느 날,

인사를 하려고 뒷좌석을 돌아봤더니

내가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엇? 하고 아래를 내려 보니 창피함을 느꼈는지

차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숨어버린 것이다.




아빠 - “친구들이 볼까 봐 창피해서 숨나?”



라고 웃으며 묻는 아버지께

그런 거 아니라며, 배가 아파서 누웠다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고 후다닥 차에서 도망쳐버렸던 기억이 난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있건,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든 전적으로 응원해 주시는 부모님을

왜 나는 무조건적으로

자랑스러워하지 못했던 걸까?

너무나 부끄럽고 후회스러워

그 순간만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하다.


그때의 기억이 죄송해서일까,

가끔 부모님이 내가 일하는 현장에

놀러 오실 때면,

이제는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두 분을 소개하곤 한다.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서운함에서 미안함으로 바뀔 때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부모님이 깨워주지 않아 제시간에 못 일어났을 때의 당혹스러움.

버리면 안 되는 고가의 물건을

청소하다 버렸다고 했을 때의 격분.

하고 싶다고 고집부리는 무언가를 다양한 요인들로 제지당했을 때의 서운함.


그 모든 억울함과 분노의 상황들이

'이해'의 시간을 거치면

진짜 부모님의 '상태'가 보이는 듯했다.


밤샘 작업으로 당신이 더 고단하여 깨워주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고가의 물건을 단 한 번도 사본 적이 없어서 그 값을 전혀 몰랐던 것일 때,

해주고 싶지만 시켜줄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아

스스로를 더 자책하고 계신단 사실을 알았을 때,


부모님의 힘 빠진 어깨와 축 처진 뒷모습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보이는 것 같다.



심리학자 우르술라 누버(Ursula Nuber)의 말처럼 기억은 이렇게 영향을 받기도 하고

끼워 맞춰지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한다.

그 사실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기억방식은 우리의 정신 상태에 영향을 미치고 미래에 대한 기대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나의 지난 기억 속 죄책감이

미래의 우리 행동에

긍정적 영향을 가져온 것처럼,


지나온 시간 속에는 ‘용서’와 ‘이해’도 함께 따라오는 것 같다.










용서는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미래를 넓게 열어준다


– Paul Lewis Boese (폴 루이스 보에즈, 미국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