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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남용 Apr 01. 2020

산에 다녀오겠습니다

일상 에세이

공기가 답답해 잠에서 깼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찾는다. SNS를 확인하고 뉴스를 본다. 서울숲을 3바퀴 걷고 처음처럼 1병을 마신 것이 전부였던 나의 어제가 초라하다. 한숨과 함께 오늘은 또 무엇을 할까 고민한다. 해야 할 것도 가야 할 곳도 모르겠다. 4시 15분을 가리키는 벽시계도 초침이 멈춰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본다. 답답한 공기는 창 밖 무더위가 아니라 내가 뱉어낸 한숨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퇴근하시는 부모님께 무기력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대충 씻고 문 밖으로 나선다. 해는 벌써 저물고 사람들은 오늘을 정리 중이다. 나는 어제처럼 다시 서울숲으로 향한다. 4시 15분만 가리키는 시계처럼 나의 매일은 같다. 목적이 없는 걸음 속으로 도망치고 또 숨을 뿐이다.

"카페 정리되면 그 돈으로 여행 가려고."
"왜? 갑자기?"
"그냥. 마음도 안 맞고 장사도 안되고 몸만 힘들어서."

"똑같은 놈 둘이서 할 때부터 내 알아봤다. 그래서 여행 갔다 오면 뭐하게?"

"몰라. 어떻게 되겠지 뭐. 내가 언제 생각하고 사는 거 봤냐?"

"답 없는 놈. 답답하다."

"인생에 답이 어딨냐? 답이 없으니 잘 살고 있는 것 아냐?"

"미친놈."


카페를 시작할 때 부모님으로부터 주택청약적금을 받았다. 10년 넘게 나를 위해 조금씩 모아둔 통장이다. 1년 안에 다 돌려드리고 해외여행 보내 드리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난 카페를 넘겼고 1년 만에 삼천만 원을 잃었다. 괜찮다. 돈은 다시 벌면 된다. 기죽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럴수록 난 더 죄송스러웠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자책했다. 제주도, 맥주바켓, 카페. 거듭된 실패 속에 점점 자신을 잃었다. 열심히 하지 않은 채 인생은 원래 답이 없는 것이라 핑계를 대는 내가 싫어졌다.


옛 경마장임을 상징하는 동상을 지나면 바닥분수광장이다. 이어 거울연못에 비친 메타세콰이아를 보며 걷는다. 그 나무가 끝나는 곳에서 너른 잔디광장이 나타났다. 하늘이 뻥 뚫린 잔디광장에는 내가 늘 앉던 의자가 있다. 그곳에서 밤하늘을 바라본다. 잘 보이지 않는 희미하기만 한 별들……. 별들과 함께 나도 찾아본다. 뿌옇고 까만 하늘. 마치 내 미래 같은 그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싶어 한참을 보낸다. 순간 하늘이 가까운 곳에서 본다면, 반짝이는 그 무엇도 조금 더 잘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비행기, 롯데월드타워 꼭대기, 남산타워 전망대, 산. 그중 멀리서 봐야 멋있다고만 느꼈던 산이 제일 나을 것 같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높은 곳으로 가는 성취감도 필요할 것 같다. 그래, 산이다. 쓰지 않던 근육이 놀라 아플지라도 꼭 가야겠다.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봐야겠다. 그렇게 정상에 갈 수 있다면, 멈춘 시계도 다시 흐를 것만 같다. 오른다고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상관없다. 지금 나는 산을 오를 생각으로 기분이 좋다. 그거면 충분하다.


늘 소리 없이 집을 나서던 내가

오랜만에 목소리가 크다.


"산에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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