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백 "펀홈"!

뮤지컬 "펀홈"이 꼭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소망을 담아

by 클레어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세 달 전에 끝난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에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정작 깊은 대화는 오가지 않아 서로를 제일 잘 모르는 가족의 이야기가 나온다. 오히려 여자 주인공 은희의 친구이자 은희 동생의 직장상사이자 은희 누나와도 아는 사이인 외부인인 종혁이가 은희의 가족을 제일 잘 알아서 가족들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인 설정이 신선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친구들에게는 말해도 가족들에게는 못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오히려 예전에 마음 근육을 위한 책을 읽고 얘기를 나누는 트레바리 북클럽 <마음>에서 생면부지의 분들과 서로의 속내를 많이 털어놨던 것 같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털어놓는 진심 어린 말들도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제일 가까운 듯하면서도 먼 관계인 가족.



뮤지컬 <펀홈>을 보면서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가족이 오버랩되었다. 만약 브루스가 조금만 가족들에게 솔직했다면, 내가 받는 시선이 따가워서 너에게 여성성을 더 강요했던 것이라고 앨리슨에게 털어놓았다면, 마지막 드라이빙 씬에서라도 조금이라도 속을 보여줬다면 이 가족이 이렇게 어긋나진 않았을 것 같은데….

뮤지컬 <펀홈> / 그래픽노블 <펀홈:가족희비극>


보면 볼수록 알 수 있는 펀홈의 매력

뮤지컬 <펀홈>을 처음 볼 때엔 이 극의 묘미를 다 알지는 못했다. 앨리슨 남매들도 너무 귀엽고 배우들도 다 좋고 넘버도 좋은데, 뮤지컬이라고 하기엔 함축되어 있는 대사와 상상으로 짐작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많아서인지 처음 보았을 때엔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브루스가 너무나도 가족들에게 나쁜 사람이라서! 자신의 성향을 숨기고 클로젯 게이로 살아가고 결혼 이후에도 계속 다른 남자, 심지어 남자아이까지 만나는 남편, 아이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아빠.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브루스 역할을 맡았지만 극장을 나오면서 씩씩대면서 나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두 번째 보고 세 번째 마지막 보는 날에서야 드디어 극의 매력을 알아버렸다. 지금 시대에도 성 정체성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아직 사회적인 편견을 감당할 수 없는데, 하물며 브루스가 살던 시기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살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인 것처럼 살아갔을 것이고,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9세의 앨리슨에게서 발견한 브루스는 어린 앨리스에게조차 남들과 똑같은 원피스, 똑같은 그림을 앨리슨에게 병적으로 강요했을 것이다. 그런 시대에 태어난 브루스가 아주 살짝은 안타까웠고 만약 현재를 살아갔다면 그가 숨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연극 <와이프>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1950년대, 1980년대, 2020년, 그리고 더 먼 미래의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주는데, 현재로 가까워질수록 성 정체성에 대한 관점이 관대해짐을 볼 수 있다.


아빠로서의 브루스는 이해할 수 있지만 남편으로서는 꽝인 것은 지울 수가 없다. 무대석에서만 보였던 헬렌의 표정이 있는데, 브루스의 옛 제자였던 남자가 집을 방문했을 때 헬렌의 쓸쓸한 표정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극 내내 담담한 감정선을 유지했던, 그러다가 앨리슨에게 '자신은 그러지 못했지만 넌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털어놓는 'Days' 넘버를 부르던 헬렌이 참 안쓰러웠다. 그의 성향을 알고 결혼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평생을 외롭게 살아갔을 것 같다.



그래픽 노블 <펀홈>

뮤지컬은 원작 만화의 스토리를 충분히 담으면서도 아기자기하게 담아낸 것 같다. 뮤지컬의 원작 만화인 <펀홈>은 그래픽 노블 장르인데, 마블 덕후가 아닌지라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는 익숙하지 않았다. 노랑노랑한 뮤지컬의 포스터 분위기를 떠올리며 원작 만화를 펼쳤는데, 생각보다 적나라한 그림체에 적잖이 당황했다. 이 이야기가 실화인 것도 놀라웠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과감하게 풀어낸 작가 앨리슨 벡델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한계이겠지만, 아무래도 앨리슨이 전지적 3인칭 시점이 아니라 자신이 겪고 들은 이야기들을 자신의 관점에서 풀어내야 하기 때문에 앨리슨 외의 인물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어려웠는데 이 부분을 뮤지컬에서 중립적인 시선으로 잘 각색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을 통해 열쇠고리(Ring of keys)가 어떤 의미인 것인지, 부치라는 용어는 무엇인지 등등 뮤지컬에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그 당시 시대적 배경, 그리고 앨리슨의 생각들이 더 구체적으로 나와 있어서 브루스 그리고 앨리슨의 이야기를 더 이해할 수가 있었다. 무대석에서 봤던 교통사고 당하기 직전의 브루스의 표정은 생각이 많고 불안정한 멘탈로 인해 주위를 살피지 못하고 뒤에서 달려오는 트럭을 보고 놀란 느낌이었지만, 원작 만화에서는 도로에 뛰어든 것처럼 표현을 해서 뮤지컬과의 다른 점을 찾는 재미도 있었고 갑자기 뮤지컬 <펀홈>이 보고 싶어졌다.


코로나라는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 때문에 조기 폐막할 수밖에 없었던 <펀홈>이 너무 아쉽다.

이 극이 꼭 다시 돌아오길 바라며,

미리 웰컴 백 펀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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