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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순응 (1)

무기력이 햇살보다 익숙해졌던 날들의 기억

by 희소

하얀 사각형의 천장과 나무의 질감을 표현한 듯한 장판 바닥이 그간 내 세상의 전부였다. 몇 시쯤인지 어머니가 출근하고 나면 집은 살인적으로 고요했다. 소리가 그리웠기에, 되는대로 휘둘러 잡듯이 손에 눌리는 영상을 재생했다. 반지하의 창문 밖에선 차소리와 발소리가 간헐적으로 새어 들어온다. 영상의 소리는 분명 방 안을 꽉 채웠는데, 내 귀는 이름 모를 아무개의 발소리로 가득하다. 다만 스무 걸음쯤 지나면 발소리는 희미해진다. 발자국마다 신발을 직직 끄는 버릇이 있는 할아버지도, 또각대는 힐 소리로 아침을 시작하는 저 여자도, 저 모퉁이를 돎과 동시에 평등하게 희미해져 간다. 내 귓바퀴를 희롱하듯 잠깐 거대하게 머물렀다가, 또 그렇게 잠깐이면 내 삶에서 완전히 추방된다.


그들은 그들이 내 우주에 잠시나마 커다란 존재로 수차례 명멸을 반복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겠지. 나의 세상은 그러했다. 누군가가 짧게 머무르고, 또 불식 간에 떠나간다. 누구도 이곳을 종착지로 삼지는 않는다. 당연한 처사다. 물과 바람이 부지런히 오랜 시간에 걸쳐 스쳐 지나다녔다. 그 흐름에 용기 있게 몸을 던졌던 저 돌들은 매끈하다 못해 투명한 느낌을 주는 수석들이 되었다. 그에 비해 한없이 초라한, 울퉁불퉁한 시멘트 파편 따위에 눈길을 오래 두는 사람은 없다. 나는 수석처럼 흐름에 이리저리 치이고 부딪히는 게 두려워 단단히, 또 정적으로 시멘트가 되어 안주하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반복되는 무료한 안정감에 나는 평화를 느낀다. 무언가 특별할 정도의 행복이 찾아온다면 오히려 불안함이 엄습할 것 같은 느낌을 마음 한 켠에서 받으며, 익숙해진 일정량의 고통이 도리어 내게 편안함을 준다는 사실에 씁쓸한 안도를 만끽한다.


이유 없는 한숨이 내 손등에 닿아 흩어진다. 차가운 듯도 따뜻한 듯도 하다. 온기를 가늠하기에 앞서 끝나버린 영상이 내 시선을 강제로 빨아들인다. 휴대폰을 쥐어서 들어 올릴 일말의 체력까지, 지금의 내 손에는 제공하기 싫어졌다. 그렇다고 그 팔을 힘 없이 내린다는 것은 무언가 패배에 승복하는 기분이 들어 내키지 않았다. 의미 없는 씨름이 내 우주에서 펼쳐졌다. 이 씨름에 고집을 부리는 것도 웃기다는 생각이 들어 떨구듯 휴대폰을 놓아주었다. 침대를 강타한 휴대폰의 존재가 경박한 충격을 만들어냈다. 퉁, 어깨부터 가냘픈 진동이 느껴진다. 바뀌는 것은 없었다. 밖은 아직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간간히 있고, 내 방 천장은 네모나고, 바닥 또한 마찬가지이다. 다만 천장의 모서리가 저리도 가까웠나 하는 생각이 새롭게끔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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