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3
설 연휴, 오랜만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용산가는 열차에 올랐다. 엄마는 못내 아쉬웠는지 하루만 더 있다가면 안되냐고 그랬지만 서울에서의 일정이 있어 어렵게 KTX 취소표를 잡았다. 술은 조금만 먹고 신발이라도 하나 사 신으라고 지폐 몇장을 쥐어줬다. 그렇게 마음이 썩 편하지만은 않게 열차에 올랐다.
아쉬움과 고단함, 복잡한 감정을 가득 실은 열차는 소복히 눈이 쌓인 호남평야를 헤치고 나아가 중간 정차역인 오송역에 들어섰다. 술냄새를 풍기며 코골던 아저씨가 내리고, 엄마 손을 잡은 네다섯살 정도의 어린이가 옆으로 앉았다. 나처럼 취소표를 급하게 잡았는지 역에서 현장발권된 종이 티켓을 들고 있었다. 표에는 파란 색연필로 무수한 동그라미와 별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정작 아이만 앉히고 어머니는 옆 칸으로 넘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근처에 앉겠거니 했는데 자동문을 열고 아예 가버렸다. 그때부터 이어폰을 꼽고 책을 읽던 내 집중력이 아예 무너져버렸다. 음악과 책 글자가 유리되어 날아다니는 듯했다. 차라리 젊은 부부나 연인이 타서 찢어졌으면 신경도 안썼을텐데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결국 아이 어머니께 연락 드려서 자리를 바꿔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어떻게 아이에게 말을 걸지 고민했다. 최근 감명 깊게 읽었던 <어린이라는 세계>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가 단순히 도움받는 대상이 아니라 온전히 인격체로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장고(長考)아닌 숙고(熟考), 어렵게 말을 붙였다.
“엄마랑 같이 왔어요?”
“네 할머니집 왔다가 집에 가요.”
“그런데 엄마는 어디 있어요?”
“자리가 없어서 따로 탔어요.”
“혼자서 KTX도 타고 대단하네요. 그런데 꽤 멀리 가야되는데 삼촌(..?)이 엄마랑 자리를 바꿔주면 어떨까요?“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럼요. 엄마랑 같이 가면 좋잖아요. 엄마한테 전화해서 옆자리 삼촌이 자리 바꿔준다고 알려줄래요?“
“저 근데요.. 핸드폰이 꺼졌어요.”
“괜찮아요. 삼촌 전화기 줄테니까 이걸로 해봐요. 이거 누르면 돼요.”
끝내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고 아이는 조금 시무룩해진것 같았다. 그리고 몇분이나 지났을까, 바쁜 걸음으로 아이 어머니가 돌아왔다. 뒤에는 어떤 아저씨도 같이 왔다. 아이 엄마 옆자리 분이 아이랑 자리를 바꿔주기로 한 것이었다. 그 어머니는 9호차에서 12호차까지 몸보다 큰 백팩 2개를 들쳐메고 꽉찬 열차를 거슬러왔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용산역에 내려 인산인해를 이룰 것이고 설상가상으로 아이는 폰까지 꺼져버렸는데. 어쩌면 ‘아쉬운 소리’를 들어준 한 명의 좋은 어른이 엄마의 걱정을 봄날 눈 녹듯 없애버렸다. 아이는 엄마와의 기차여행을 즐겼을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머쓱해서 마치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책만 보고 있었는데 엄마를 따라가던 어린이가 뒤를 돌아 배꼽 인사를 했다. “삼촌 고맙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지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9호차 아저씨처럼,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