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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치 May 01. 2019

장기근속자의 퇴사,
잃어버린 10년을 찾아서

나는 후회 없는 시간을 보냈을까?

Photo by Henrique Félix on Unsplash


흔한 장기근속자의 탄생


요즘엔 평생직장이라는 말을 언제 써봤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이직, 퇴사를 하며 여러 회사를 거치는 듯하다. 나 역시 대학생 때만 하더라도 자유로운 영혼처럼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대학 졸업 후 취업한 회사에서 10년 차를 맞이하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그냥 바쁘게 밀려드는 일을 하나하나 처리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장기근속자로 변신되어 있었다. 이 회사에 입사 후 3년을 근무하다 퇴사했지만, 3개월 후 다른 팀으로 러브콜을 주셔서 재입사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7년이 지났으니 나의 가족, 지인들은 내가 이곳에서 뼈를 묻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오래 근속할 수록 더 좋은 복지를 주고자 노력하는 회사들도 많지만 나의 ex회사에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일을 더 많이 주는 것이 함정이었다. 업무 히스토리를 제일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a.k.a. 화석, 고인물) 개발직 실무와 함께 직원/인턴/운영 채널 관리, 타 부서 협업과 같은 일들이 1+1+1처럼 더해졌다. 테트리스는 쌓이면 한층씩 없어지기라도 하는데. 




번아웃, 퇴사, 그리고 낯선 질문


어느날 문득 멘탈이 무너졌다고 느꼈을 때 이것이 번아웃 증후군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인생의 쉼표 좀 찍어보자는 마음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퇴사 후에는 백수 포지션이 되고 하고 싶었던 것들을 찾아서 했다. 여행도 다녀오고 듣고 싶던 요가, 공예 클래스 가기, 낮에 산책하고 카페 가기 등등…


하지만 잠시도 쉬지 못하는 머슴의 삶에 익숙했던지라 틈틈이 작업물 정리하며 관련 채용공고를 습관적으로 둘러보고 (사주를 보러 갔을 때 계속 일할 팔자라더니) 운 좋게 몇 군데 면접을 볼 기회도 생겼다. 확실히 간만에 보는 면접이라 낯설고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중 어느 회사의 디자인 팀장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무려 2번이나) 받고 나의 잃어버린 10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10년 동안 한 회사를 다녔는데 

그 긴 시간을 그곳에서 보낸 걸 후회하지 않아요?



여러군데 면접을 보면서 오래 다니어 익숙한 회사를 퇴사하고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은 들어봤지만, 내가 그곳에서 보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처음 받았기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여러 가지 맥락과 생각, 의도를 통해 나온 질문이었을 테고 어떻게 보면 평범한 질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낯선 질문은 한 줄의 문장이 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며칠 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20대의 대부분과 30대 일부를 보낸 곳을 떠남에 있어 어떤 것을 얻고 잃었나?

내가 퇴사한 것이 옳은 것일까? 옳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 곳에서 후회 없는 시간을 보냈을까?




후회와 선택 사이


후회라는 말은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친다는 뜻이라고 한다.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경력기술서, 포트폴리오를 다시 읽어보고 업무 외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작은 버킷리스트, 그날그날의 감정을 적었던 일기, 대화를 떠올리며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려고 했다. 글자로 읽어보고 적다 보니 확실히 차분하게 지나온 걸음을 바라볼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것들도 많았고(흑역사 제조기!),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순간도 성취감으로 뿌듯했던 것들도 많았다.


하지만 기억들을 살피며 느낀 것은 후회의 갈림점에는 항상 나의 선택이 있었고 나는 그 선택에 대해 가능한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걸어온 날들은 선택의 연속이었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고 생각하니 후회보다는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다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최선이라기보다는 차선, 또는 차악일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내 인생인 것이다. 


한 우물에서 살며 개구리가 되었다고, 혹은 여러 우물을 거치며 한 곳에서 오래 정착하지 못했어도 

지난날의 선택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일 테니,
그런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해 좀 더 믿음을 가지고 오늘의 일에 집중하자.


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장기근속자에서 백수로, 구직자로, 다시 근로자로의 변화 속에서 새삼스럽게 느꼈던 내 인생의 1/3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후회스러운 감정을 겪고 있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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