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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Nov 23. 2021

툴루즈 맹학교 방문기

Institute National des Jeunes Aveugles

            제과학교 입학을 위한 구직활동에 열중하느라 그동안 나의 본직을 잊고 있었다. 툴루즈 길거리에는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다니는 걸 발견할 수 있는데, 오래된 도시라 길이 울퉁불퉁한 돌로 포장되어 있거나 그나마도 길이 매우 좁아서 차 한 대가 지나가기도 좁은 경우가 많다. 유도블록이 설치되어 있는 경우도 많지 않다. 인류 역사상 시각장애학교가 처음 개교한 나라임에도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많지 않은 건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길을 다니다 보면 운전자나 다른 보행자들이 길을 양보하거나 스스럼 없이 도움을 건네는 걸 쉽게 목격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시내를 보행하는 시각장애인들의 흰 지팡이도 다 같지 않고 모양도, 기능도 다 다른 점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사람들은 다 어디서 특수교육을 받았을까?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툴루즈에 유일한 국립맹학교가 있다. Institute National des Jeunes Aveugles. 줄여서 INJA라고 불리는데, 1700년대 후반 발렌틴 하우이가 파리에 최초의 맹학교를 개교한 후 몇 년 안에 프랑스 전역의 거점 도시에 맹학교가 개교했다. 툴루즈 맹학교도 그중 하나로 2백 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몇 년 전 방문했던 파리 맹학교와 비슷하게 학교 교정에 설립자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미관을 위해 간판을 크게 세우지 않는 프랑스라 그냥 지나가면 오래된 교회건물인가 생각할 수 있는데, 이 동상이 이 학교의 단서인 셈이다.  

        학교 웹사이트에서 찾은 교장선생님의 메일로 나의 이력서와 간단한 소개글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특수교사인데, 학교를 방문해보고 싶어요. 가능하면 자원봉사자와 같은 다른 관련된 일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이메일을 보낸 건 8월이라 한참 여름 바캉스 시즌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다음 날 인사담당자로부터 메일이 왔다. 다음 주에 몇 시까지 나를 찾아오세요. 전 세계 어디를 가든 특수교육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가슴이 뛰는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에 내가 했던 일들을 포트폴리오로 만들어봤다. 불어로 내 이야기를 하는데 한계가 있으니 아날로그적이긴 하나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인사담당자가 가장 자랑하던 시설이다. 독립을 준비하는 20대 초반 시각장애학생들이 실제 집처럼 꾸며진 곳에서 몇 주 동안 먹고 자고 생활하며 자립생활 기술들을 익히는 곳이다

        그래서 만나게 된 툴루즈 맹학교의 인사담당자. 중도 중복 학생 부서 담당 디렉터이기도 하다.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바로 학교 투어에 나섰다. 아직 개학 전이라 수업을 준비하는 교사들과 평생교육을 받는 성인 장애인들만 만날 수 있었다. 동의하에 학교 안 구석구석을 다니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도 나름 좋았다. 툴루즈 맹학교는 주변 지역인 몽토방, 알비, 카르카손을 커버하는 지역 거점학교이다. 매일 등교를 하는 학생도 물론 많지만 거리 때문에 기숙사에서 생활하거나 학생들에 따라 필요한 수업만 일주일에 하루만 출석해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같은 반에서도 매일매일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 수가 달라지니까 통학버스나 기숙사 방을 배정하고 준비하는 것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니 학교 구성원 모두 유동적으로 대처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작년 초에 특수학교에서 일할 때 통학 담당 선생님이 개학 연기에 격일 등교 때문에 고생했던 게 생각났는데, 여기는 일상이 그러하구나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학교를 둘러보고 들은 생각을 종합해보면 세계 많은 특수학교를 다녀봤지만 역시 최초의 맹학교답게 부서가 세분화되어 있고 그래서 전문화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구나, 라는 것이었다.

보행 교실 벽면에 걸린 다양한 보행 도구들. 한국에서 동교 선생님들과 함께 보행지도사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학생들에게 보행교육을 가르쳤던 추억이 떠올랐다. 
의자 아뜰리에/ 직업교육 일환으로 프랑스 전통 의자를 수리하고 제작하는 법을 가르친다. 교내에 상점이 있어 제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교내에 물리치료사, 일반의, 안과 전문의가 상주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이나 프랑스나 전문의를 만나기 참 어려운데, 학교에서 바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니! 
교사의 재량껏 교실밖 복도까지 학생에게 맞춰 교육환경을 재수정해 두었다. 중복장애 학생이 사용하는 비언어적 의사소통법을 붙여놔 학교 구성원 모두가 알게 해둔 점이 좋았다.
기숙사 내부 모습. 신체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음악실, 화장실, 감각통합실 등 문 앞에 촉각적 단서를 다르게 해 둔 점도 참 좋았다. 한국 동료 선생님에게도 이거 참 좋은 아이디어  같다며 신이나서 공유했다.
교실과 도서관 모습.  작지만 잘 구조화된 느낌이다. 책상에 점자 도구가 아예 부착되어 있는 점도 귀여웠다.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은 학생들이 거쳐가며 쌓인 노하우가 학교 시설 안에 가득해서 구경하는 데 가슴이 두근두근 신이 났다. 실제 수업도 꼭 참관하고 싶다고 자원봉사할 기회가 있다면 꼭 연락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제과사 자격증을 취득해 장애학생들에게 전문적인 직업교육을 하고 싶다고 하니 정말 좋은 계획이라고 응원도 받았다. 불어도, 파티시에 자격증도, 아직 나아갈 길이 멀었지만, 언젠가 다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날이 오겠지? 시간과 정성을 들여 학교를 소개해준 툴루즈 맹학교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꼭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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