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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Nov 24. 2021

Jour d'essai

그리고...

        드디어 Saint-Aubin의 파티스리 셰프인 Athanas에게 연락이 왔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올 때마다 긴장하며 받았는데, 이력서를 건넨 지 일주일 만이었다. 실제로 본 적이 없었기에 금요일 오전 10시에 찾아가기로 하고 연락을 끊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온 금요일 아침. 매장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나를 알아본 판매직원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판매직원을 따라 50m 정도 걸으니 옆 건물에서 검은 요리사 옷을 입은 남성이 나온다. 작은 체구에 검은 신발, 검은색 조리복에 검은색 모자. 귀에 남은 커다란 피어싱 자국, 그리고 알록달록 온몸에 새겨졌을 법한 문신. 그가 바로 Athanas 아따나스이다. 

        Bonjour! 무서울 것 같은 인상과는 달리 유쾌한 목소리를 지녔다. 더욱이 호탕한 웃음까지 짓는 그는 참 밝아 보인다. 그의 손에 종이가 들려 있었는데, 내가 저번 주에 건넨 이력서를 꼼꼼히 봤는지 이력서가 꼬깃꼬깃하다. 좋은 징조다! 문 앞에 서서 자기소개를 하고, 그간 인턴쉽을 하며 찍었던 사진들을 보여줬다. 그의 얼굴이 사뭇 진지하다. '그런 복잡하고 어려운 케이크들은 우리 라보에서는 만들지 않아요. 음, 일하는 거 한 번 보러 옵시다. 조리복 챙겨서 내일 새벽 6시까지 오세요! 프랑스에서는 최종 채용까지 다양한 단계를 거치는데, 서류심사> 실무 면접> 인사담당자 면접> 짧게는 반나절 혹은 일주일간 함께 일해보기> 계약서 작성이라는 단계를 거친다. 계약서에 서명을 하더라도 짧게는 한 달 혹은 6개월 정도 아무 이유 없이 회사나 지원자나 자유롭게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기간을 갖고서야 적어도 '아 이제 쉽게 해고당할 일은 없겠구나' 안심할 수 있다. 채용절차가 까다로운 까닭은 그만큼 회사 입장에서 직원을 쉽게 해고할 수 없게끔 법으로 잘 보호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과점에서 반나절 정도 일해보는 Jour d'essai는 꽤나 보편화되어 있는 면접의 연장선이다. 긴장된 마음으로 조리화와 모자를 챙겨 다음날 출근했다. 

        5시 50분 매장에 도착해보니 매장 한편에서 제빵사들이 열심히 빵을 굽고 있다. 처음으로 가게에 이력서를 내러 왔을 때 보았던 아시아계 제빵사가 '아, 오늘 오기로 한 사람이 너구나!' 하며 인사를 건넨다. 친절하게도 매장에서 조금 떨어진 labo(주방)까지 데려다준다. 어여쁜 그녀의 이름은 Flora 부모님이 베트남에서 이민 온 이민 2세대라고 한다. 라보에 도착하니 아따나스가 바쁜 와중에도 탈의실과 화장실 이곳저곳을 안내해주었다. 옷을 갈아입고 라보에 가보니 덩치 큰 직원이 인사를 건넨다. 이름은 니콜라스 줄여서 니코란다.     

쌩또방 빵집의 케이크를 만들어내는 라보. 적당히 더럽고(?) 적당히 실용적이다. 벽과 천장에 오래된 주방의 흔적이 가득하다. 

        아따나스가 처음 주문한 일은 사과를 손질하는 일이었다. 대부분은 크럼블을, 예쁘게 잘 깎인 사과로는 타르트를 만들었다. 사과를 손질하고 나니 어프헝티로 보이는 어린 남학생이 출근을 했다. 전날 백신을 맞아 지각을 했다는데 아따나스가 욕을 바가지로 쏟아붓는다. 아, 이런 면도 있구나 나도 괜히 조심하게 되었다. 

        어프헝티 알렉시가 알려주는 데로 피자도 만들고, 니코를 도와 산딸기로 타르트를 만들었다. 중간중간 설거지도 하고 내 이름을 헷갈려하는 직원들에게 열 번 넘게 다시 말해주니 나도 내 이름 발음을 어떻게 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 됐을 무렵 시계를 보니 어느새 4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음날 필요한 크로와상 냉동생지를 오븐용 철판에 나란히 놓는 일을 할 때쯤 아따나스와 니코, 알렉시까지 모두 나가고 나만 덜렁 남아있다. 모두가 나간 사이 추억에라도 남기자 하고 케이크 사진을 찍고 있으니 아따나스가 들어와 묻는다. 

        '업체 찾은 지 얼마나 됐어?' 

        '4개월 정도 된 거 같은데요.'

        '더 이상 안 찾아도 될 거 같네. 같이 일해보자!'

         아따나스는 분명 격한 반응을 기대했을 텐데, 나는 순간 얼떨떨해서 어떻게 말을 할지 몰랐다. 

        '진짜, 진짜, 진짜?'    

        아따나스가 자신의 테이블에 본인 신분증을 올려놓는다. 자기 신분증 사진 찍어가서 학교 등록하란다. 행정 처리하는데 불어 때문에 어려우면 남편 통해서 전화하라며 본인 전화번호도 종이에 큼지막하게 적어줬다. 계약서 준비되는 데 시간이 걸리니 오늘이라도 바로 서류 작업하라고 일찍 퇴근시켜줬다. 퇴근하며 아따나스에게 'Merci pour l'opportunité 기회를 줘서 고마워!'라고 말했다. 진심으로. 그 짧은 문장을 듣고 아따나스는 유쾌하게 웃으며 'r' 발음을 교정해준다. 그와 함께 일하면 왠지 불어도 굉장히 늘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너무 신이 나서 야호! 하고 점프까지 했다. 나도 이제 제과 견습생 어프헝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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