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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Nov 28. 2021

제과학교 입학!

CAP 성인반 1년 과정의 첫 주

  8월 27일 생또방에서 하루 일을 하고 합격 소식을 들은 후, 30일에 인사를 비롯한 행정처리를 담당하는 사장인 Carole과 만났다. 생또방은 중국인 부부와 프랑스인 부부가 함께 만든 회사로, 캐럴은 프랑스 부부의 아내이기도 하다. 이 두 커플이 어떻게 툴루즈에서 사업을 함께 시작하게 되었는지 무척 궁금했지만 차차 시간을 갖고 알아가기로 했다. 계약서 작성을 위한 정보를 적는 간략한 서류에 서로 간의 정보를 기입하자 캐럴이 영어로 'Welcome to our team'이라고 정답게 말해주었다. 20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회사의 안살림을 책임지는 사람이니 무척 꼼꼼한 인상을 지녔다. 체류증 갱신을 위한 Ofii 시민교육 때문에 2주 후 9월 13일 첫 출근을 하기로 하였다. 계약서는 Chambre de Metier라는 기관에서 Contrat de Pro를 담당하는 직원이 빠른 시일 내로 작성해주기로 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 건 노동자의 권리를 중요시하는 프랑스에서 지켜야 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하지만 담당자는 휴가를 핑계로 서류도 아주 늦게, 그것도 오류 투성인 계약서를 여러 번 보내서 내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그래서 결국 출근 첫날 일을 시작하고 나서 계약서 스캔본에 서명했다. 우편으로 보내준다는 원본은 한 참 뒤에서야 도착했다는 후문. 계약 조건은 다음과 같다.

  주 35시간, periode d'essai 30일, 교통비 반 절 지급, 점심식사로 바게트, 샌드위치, 음료수 제공, 월급은 SMIC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1554,58유로 물론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 기간도 업무로 인정되어 출근하지 않는 기간임에도 급여가 제공된다. 교육시간은 1년 동안 약 385시간 정도이고 이 비용도 OPCO라는 기관을 통해 업체에서 부담하게 된다. 주중 하루 휴무와 일요일 전체 휴무로 주 5일 일하고, 공휴일도 휴무일이다. (제과업계에서 공휴일에 쉰다는 건 굉장히 파격적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근무시간은 주중 새벽 5시에서 낮 12시까지, 토요일에는 그보다 한 시간 이른 4시부터 11시까지 근무이다. 교사의 9 to 5 삶을 살았던 거에 비교하면 굉장한 변화이다.

  첫 2주간의 근무기간은 쉽지 않았다. 새로운 공간과 사람들에 적응하고 휴무날마다 하루 종일 Ofii 시민교육까지 들어야 했기 때문에 퇴근하자마자 씻지도 못하고 자는 날이 많았다. 그중 가장 힘든 건 새벽 출근도 아니요 하루 종일 불어를 들어야 한다는 거였다. 이거 꽤나 에너지 소모가 되는 일이다. 불어가 성우가 녹음한 불어 교재의 완벽한 발음이 아닌 데다 사람마다 악센트도 다르고, 심지어 langage familiale이라는 비속어, 은어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잘 못 알아듣고 실수하는 것도 많으니 나도 답답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답답한 적응 기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잘 가는 법! 9월 27일 제과학교가 시작했다!


툴루즈 Matabio 기차역. 기차를 타고 15분 남쪽으로 가면  Muret라는 역에서 내려 15분 걸어가면 학교가 나온다.

  학교 안내문에는 마치 해리포터가 받은 호그와트 준비물처럼 다양한 준비물들이 적혀 있었다. 요술지팡이는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학교 조리복과 조리도구는 주문을 했고, 색연필, 자, 자물쇠, 연습장, 파일, usb 등등 준비물을 사러 문방구에 가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탄자니아에서의 교사생활까지 합쳐 약 7년여를 학교에 일을 하러 갔는데, 준비물을 챙겨 학교 입학을 준비하려니 신기하기도 하고 설명하기 힘든 기분이었다. 다행히 내가 속한 반은 나와 같은 배경을 가진 성인들이다. 대부분 다른 직업을 갖고 생활하다 파티셰가 되기 위해 나선 용기 있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 일지, 회사에서의 첫 2주를 버틸 수 있었던 건 학교에 간다는 설렘 덕분이었다.

  학교에 가는 건 평소보다 3시간 정도 더 늦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나 같은 습생에겐 휴가기간이나 다름없다. 학교에 도착해 받은 첫인상은 프랑스 학생들은 땅바닥에 푹석푹석 잘도 앉아 있다는 것이다. 내 교실이 있는 한국과는 달리 교사의 공간에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맞춰 이동하는 시스템인 데다 종이 울리기 전에는 교실에 미리 들어갈 수도 없다. 개인 사물함도 없으니 무거운 가방을 옆에 두고 복도며 잔디밭이며 앉아 있는 게 당연해 보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머뭇거리며 시간표를 찾았다. 내가 들어야 하는 수업으로는 영어, technologie, Gestion(경영), SAE(보건), EPS, Chef Oeuvre, 미술 그리고 실습 등이 있다. 월, 화, 수는 이론 수업을 듣고, 목, 금에는 실습이 잡혀있다. 그리고 들어간 첫 수업! 계약을 좀 늦게 한 탓에 다른 학생들보다 한 차시 정도 늦게 합류했는데,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서로 잘 아는 듯한 모습이었다.


Dessin Arts 수업. 영어 필기체를 연습하는 시간이었다. 미술시간에 왠 글씨 수업인가 싶겠지만 주문받은 케이크에 멋지게 고객의 이름을 적어주는 것도 파티시에의 일이다.  

 학생들 중에서도 나는 단연 나이가 많은 학생 중에 속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학생은 46세 프레데릭. 군인이었다가 현재는 항공업체에서 일하는데 요리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요리를 좋아하는데, 요리와 달리 정확한 계량이 중요한 제과 쪽일이 본인하고 더 맞고, 오후와 저녁 시간이 자유로운 게 좋아서 직업을 바꾸게 되었단다. 매우 진지하고 칼 같은 게 누가 봐도 군인 아저씨 같긴 하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20대 어린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세상엔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견습생 월급만으로 가족들까지 먹여 살리기 어려울 텐데 라고 생각했는데, 프레데릭의 경우에는 항공회사에서 직업 변경을 위한 연수 차원에서 기존 월급을 다 받으며 학비까지 지원해줘서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30대 초반 학생 둘, 가장 어린 학생이 18살, 대다수가 20대인데, 단순히 직업을 바꾸려는 학생들도 많았지만, 코로나로 실업자가 되어 직업을 바꿀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았다. 가장 신기했던 케이스는 28살 카미유. 전직 의사 선생님이다. 취미로 케이크를 구워 환자들에게 나눠주던 일에 행복감을 느껴 직업을 바꾸게 되었단다. 손에 청진기 대신 거품기를 든 의사라니, 이제껏 해온 공부가 아까울 수도 있지만 역시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테크노 수업. 실습시간에 어떤 순서로 진행되는지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시간을 가졌다. 불어로 다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이런 시각화된 자료가 너무 좋다!
나의 실습자리. 학생 개인당 한 자리를 배정받는데, 1년 동안 사용하고 시험도 이곳에서 치룬다. 로보 파티시에를 비롯한 도구들에 각자 번호가 적혀있다.

 첫 주 실습시간에는 슈 반죽을 이용한 에클레어와 슈켓, Duchesses, 우리나라 센비과자 같은 아몬드 Tuile, 크로와상, 애플 타르트, Dame blanche 등을 만들었다. 처음 보는 실습실에 조리도구도 받지 못해 여기저기 빌려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잘 못 따라가는 거 같으면 실습 선생님이 옆에서 밀착 마크해주는 덕에 무사히 실습을 따라가던 중...

  우리 과 행정 직원이 급하게 실습실로 들어오더니 실습 선생님과 급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이상한 예감은 꼭 틀리질 않는다지. 선생님이 멀리서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계약이 잘못되었어요.'

  '네? 뭐라고요?'

 '수업 끝나면 바로 내 사무실로 오세요!'

 이렇게 말하고 돌아가면 나는 어쩌란 말인가, 별별 생각이 드는 와중에 걱정에 눈물까지 나는 걸 참으며 정신을 붙잡고 실습을 겨우 다 마쳤다.


  그리고 행정실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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