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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Dec 25. 2021

크리스마스이브 새벽 2시

프랑스 빵집에서는 무슨 일이

     크리스마스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크리스마스날 생크림 케이크를 사들고 집에 들어가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게 거의 문화로 자리 잡았는데, 하물며 파티스리를 사랑하는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날 맛있는 케이크가 빠질 수는 없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이나 크리스마스 당일 점심 식사는 기본 3~4시간씩 진행되는데, 이때 대미를 장식하는 디저트가 없는 크리스마스 식사는 상상할 수 없다. 이 말인즉슨 파티스리 4개월 차 어프헝티에게는 엄청나게 바쁜 한 주가 될 거라는 것을 의미했다. 가족 중심적인 우리 빵집은 다행히 25일 금요일 크리스마스 당일에 문을 닫기로 해서 모두가 평일 휴무 없이 월~금 다 함께 일하기로 했다. 이 주간은 어쩌면 그동안의 우리 팀워크를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3~4개월 동안 일을 배운 어프헝티들과 기존 팀원들이 얼마나 호흡을 잘 맞추어 왔는지, 그리고 어프헝티들은 팀원으로서 잘 기여할 수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순간이다. 보통 적게는 3명, 많게는 5명이서 함께 일하던 주방에서 6명이 함께 일하려니 작은 주방이 더 작게만 느껴졌다. 주방을 가득 채운 건 사람 수만이 아니었다. 생산해내야 하는 케이크의 양과 업무 강도만으로 긴장감이 팽팽했다.


     프랑스는 파업의 나라다. 노동자의 권리이지만, '아니, 왜 하필 이런 순간에?'라고 원망할 정도로 시기적절한 순간에 파업을 마주하게 된다. 출근길에 갑자기 마주하는 기차 파업도 그렇지만, 대목인 크리스마스 직전에 시작한 청소부들의 파업은 당황스러웠다. 쓰레기를 수거해가지 않는 바람에 안 그래도 생산량이 많아 쓰레기 양도 많아진 빵집에서 위생상 오랫동안 쓰레기를 내부에 둘 수 없기 때문에 빵집 앞에 쓰레기가 가득 쌓였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아름다워야 할 거리에 넘쳐나는 쓰레기라니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라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쓰레기가 가득한 빵집 앞. 쓰레기통들 덕에 더 좁아진 인도길로 빵들을 날라야할 때는 마치 서커스를 하는 기분이었다.

     대망의 크리스마스이브. 우리의 출근 시간이 정해졌다. 새벽 2시. 그 전날 새벽 5시부터 낮 12시까지 일했었으니 꼬박 14시간 만에 다시 출근하는 셈이다. 그 전날 저녁도 먹지 않고 6시부터 잠에 들었다. 어학원도 방학이라 숙제도 시험도 뒤로 미룬 채 팅팅 부운 다리를 주무르며 넷플릭스를 켜 둔 채 말이다. 이조차도 나에게는 감사한 휴식이다. 그다음 날 새벽 1시에 일어나 평소보다 더 붐비는 군중을 헤치고 출근했다. 전날 저녁도 먹지 않은대다 커피까지 마시고 거기에 긴장감까지 더해지니 위장이 다 쓰렸다. 제빵팀도 분주하긴 마찬가지였다. 푸아그라와 곁들일 빵도 프랑스 식탁에 빠질 수 없으니 말이다. 매장 안에 크리스마스 특별 에디션으로 악어를 비롯한 다양한 모양의 빵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났다. 잠을 물리치기 위해 우린 더 신나는 음악을 틀고 밀가루로 허여게 변한 머리 위로 두 팔을 흔들며 춤을 추기도 했다. 역시 힘든 일을 할 땐 노동요가 필요한 법.

악어 빵. 셰프 제르미가 나에게 한 마리 선물해줬다.
주방의 분주한 모습. 허둥대지 말고 실수하지 말자. 마음 속으로 되뇌이며 한 숨 크게 쉬고 입장한다!
평소에 만드는 케이크들에 장식을 더 풍성하게 했다. 작은 장작나무 케이크 부쉬렛트들이 눈에 들어온다. 도끼와 톱 장식으로 재미를 더했다.
버터를 잔뜩 넣은 버터 크림으로 만든 롤케이크 방식의 장작나무 케이크.
거의 아이스크림이라고도 할 수 있는 텍스처의 부쉬 드 노엘. 틀을 사용해 모양이 일률적이고 글리사쥬를 사용해 반짝이는 표면을 연출해낸다.  


     경험 많은 셰프도 당황하기 쉬운 날. 고성과 비명이 오가는 주방에서 어프헝티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조용히 발에 불이 나게 선배들의 일을 보조하는 것. 지금은 마무리 장식이나 포장만 하지만 내년쯤에는 경험이 쌓여 케이크를 직접 만들 수 있길 속으로 바라보았다. 쉬는 시간 없이 주문 들어온 케이크들을 만들고, 부지런히 포장하고 나르는 일을 하다 보니 서서히 동이 텄다. 매장 오픈 7시가 되기 전부터 빵을 사려는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리의 마음도 바빠졌다.

미리 주문 받은 케이크들을 포장해서 매장으로 나르는 업무도 쉽지 않았다. 떨어뜨리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바래고 또 바랬다.


      8시. 모든 주문을 소화해내고 나른 매장으로 보낼 케이크들도 우리의 손을 떠났다. 청소 시작 전 밖으로 잠시 나와 쉬는 시간을 가졌다. 모유 수유 때문에 커피도 술도 마시지 않던 동료 클레유도 이날 힘들었는지 담배를 줄줄이 피워댔다. 비흡연자인 나는 쭈그려 앉아 스트레칭을 하는 것만으로도 큰 휴식이다. 한 시간 후 우리도 퇴근이다!

청소시간의 주방. 오래된 주방은 청소를 해도 좀처럼 티가 나지 않지만 하루의 마무리와 내일을 준비하는 나름 긴장을 푸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 시간 가량 청소를 끝내고 시계를 보니 오전 9시 30분이다. 7시간 근무시간인 걸 고려하면 평소보다 30분 더 지체되었지만 이날 온종일 일했다는 다른 매장 어프헝티들 이야기를 견주어 볼 때, 우리는 제법 잘 맞는 한 팀인 것 같다. 비싼 값에 내가 만든 부쉬 드 노엘을 집에 사갈 수는 없었지만 대신 귀여운 악어 빵과 갖구워진 빵을 한 아름 안고 퇴근했다. 이렇게 나의 어프헝티 기간 첫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다음 주부터는 갈레트 시즌 시작이다! 주말 동안 소파 밖을 떠나기 쉽지 않을 듯하다.

붐비는 매장을 보는 것 만큼 기분 좋은 순간도 없다. 9시 30분 퇴근 길의 매장. 쓰레기 좀 수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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