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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Jan 10. 2022

코로나 확진

7일간의 자가격리

        제과학교에 가는 월요일. 매번 아나이스의 차를 얻어 타닌 덕에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학교에 가게 되었다. 업체와 갈등이 있었던 아나이스는 운이 좋게도 학교 근처 한 제과점에 새로 취직했고, 덩달아 제과학교 반까지 바꾸게 되었다. 아나이스가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되어 무척 잘된 일이지만, 이래저래 도움을 많이 받았던 나로선 꽤나 아쉬운 일이다. 툴루즈 마타비오 역에서 학교가 있는 Muret까지는 기차로 20분 정도.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기차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Muret역에서 학교까지 걸어가기까지 넉넉잡아 1시간 30분이 걸리는 일이다. 차로 다니면 20분이면 가는 곳이다 보니 뚜벅이는 아쉽기만 하다. 제과 도구들까지 양손에 가득 들고 가려니 아찔하다. 다행히도 가는 길이 심심하지 않게 우리 제과점 제빵 어프헝티와 함께 가게 되었다. 우리 제과점에 코로나를 퍼뜨린 최초 확진자인 필립이다. 


        다른 사람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프랑스 사람들이다 보니 어쩌다 보니 필립의 닉네임은 무슈 코로나가 되어 있었다. 확진된 후 자가격리 후 처음 외부활동으로 학교에 가는 길이라 무척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코로나에 걸리니까 어때? 많이 힘들었어?'라고 물었더니 하필 크리스마스 직전에 확진이 되어 가족들을 한 명도 보지 못한 게 제일 힘들었다고 한다. 끄덕끄덕. 1년째 코로나로 한국에 못가 영상통화밖에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충분히 공감되는 대목이었다. 매일 새로운 확진자가 30만 명 넘게 나오는 프랑스는 백신 접종자는 7일 격리, 미 접종자는 10일 격리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월요일 아침 첫 시간은 늘 불어 수업으로 시작한다. 아나이스가 반을 변경한 탓도 있지만 오늘따라 학생 수가 무척 적어 보인다. 반 이상이 확진자이거나 밀접접촉자라 못 나왔단다. 9시부터 5시까지 수업을 꽉 채워 보내고 툴루즈로 다시 돌아가는 기차 길도 필립과 함께했다. 그런데 이 날따라 머리가 아프고 자꾸 기침이 나온다. 동네 약국에서 항원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첫 검사를 했을 땐 음성이었는데, 10일이 지난 1월 3일 그새 두 번째 검사이다. 첫 번째 검사 때와는 달리 코 속이 부었나 할 정도로 면봉을 넣는데 눈물이 찔끔 났다. 검사를 마치고 처방받은 약을 받으러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친다. 뒤돌아보니 검사를 해주었던 약사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마담 양성이 나왔어요. 7일간 자가 격리하시면 됩니다. 더 궁금한 거 있으세요?'     

        당황했다. '네?' 코로나라는 단어와 살아온 지 2년이 훨씬 지났지만 내가 확진자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1초에 2명이 걸리는 프랑스에서 살면서 학교에 다니고 일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는 내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 거라는 터무늬 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약국에서 해열제를 추가로 더 사서 얼른 집으로 돌아왔고, 나의 7일간의 자가격리가 시작되었다.


        막상 양성이 뜨고 나니 생각나는 건 우리 반 학생들이었다. '필기구도 빌려 쓰고, 마스크 벗고 점심도 같이 먹었는데 어쩌나?' 일요일에 검사를 미리 받았으면 학교에 가지 않았을 텐데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일요일에 검사를 할 수 있는 약국도 없거니와 코로나가 아닐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탓에 그리고 학생이 학교를 빠지면 안 되지!!!라는 바보 같은 생각에 검사가 늦어졌다. 안일함이 낳은 결과였다. 일단 5시간 나와 같은 공간에 있었던 불어 선생님한테 이메일을 보냈다. 늦은 밤이었는데 바로 답변이 왔다. '연락 줘서 고마워!' 그다음 날 아침 8시, 불어 선생님에게 연락을 받았는지 학교 코로나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20년도 한국에서 일할 때는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을 경우 학교 전체 폐쇄가 매뉴얼이었다. 하지만 22년도 프랑스에서는 확진자 1명으로는 학급이 폐쇄되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나와 함께 있었던 8명의 학생들은 코로나 테스트를 하고 음성인 경우에만 학교에 오게 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문제는 같은 반 학생들 중에는 백신 미접종자인 15살 학생들도 있어 그 학생들은 음성이 경우에도 48시간 정도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이게 웬 민폐람. 학교에 가지 않아 좋다고, 고맙다고 문자를 보내는 짓궂은 학생들로 내 마음은 더 불편해져만 갔다. 


        집에서 쉬는 동안 제과학교 선생님들이 쪽지 시험지를 메일로 보내주어서 다행히 시험을 치러 성적에 반영시켜주었다. 열이 나고 머리가 멍해 잘 집중할 순 없었지만, 가끔 다른 일에 신경을 돌릴 수 있어 이마저도 즐겁고 감사했다. 실습 날인 금요일에는 학교에 가지 못해 새로운 케이크를 배우지 못하는 게 무척이나 아쉬웠는데, 자가격리 해제가 하루 남은 일요일 저녁인 지금에는 출근할 생각에 긴장되기 시작한다. 다행히 빵집 측 배려로 휴무일을 조절해 월요일까지 더 쉬고 화요일부터 출근하게 되었다. 7일간의 자가격리 동안 기침과 가래, 근육통으로 몸이 많이 힘들었지만 5월부터 인턴쉽을 시작으로 이렇게 제대로 쉬어본 적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잘 쉬었다. 보고 싶었던 한국 드라마도 실컷 보고, 코가 막혀 맛은 잘 못 느껴졌지만 소울 푸드인 떡볶이도 실컷 해 먹었다. 크리스마스에 새해에 이른 근무시간과 추운 출근길 탓에 체력이 많이 약해져서 걸렸었나 보다 라는 핑계로 먹고 자고 쉬는 데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처럼 2주가 아닌 7일인 게 다 아쉬울 지경이다. 


        글을 쓰는 십여분의 시간 동안 프랑스에선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었을까. 다행인 건 아직까진 나로 인해 나의 가족이나 직장 동료, 학교 학생들 중 더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쉬는 동안 제자들로부터 카톡도 많이 받았다. 그새 졸업반이 된 전공과 학생들 중 많은 학생들이 각급 학교 일자리로 선발돼 올해부터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 학생들이 1학년이었을 때 코로나로 개학이 연기되고, 현장실습이 취소되고, 밥 먹기 전에 체온을 재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코로나 와중에도 취업에 성공해 당당한 사회인이 되다니 참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때 그 선생님이 프랑스에서 코로나에 걸려 골골대고 있을 줄이야. 코로나가 알고 보니 향수병인가 보다. 한국의 제자들과 동료 선생님들이 무척이나 그립다. 한 시름 쉬었으니 이제 또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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