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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Jan 31. 2022

코로나 확진 그 후

일상이 주는 안정

    1월 3일 코로나 확진 이후 어느새 3주가 지났다. 1주일 자가격리 이후 2주간 근무를 했고, 저번 주에는 제과학교에도 다녀왔다. 빵집 직원들 중 한 명이 더 코로나에 걸렸고, 제과학교 학생들 중 반절은 자가격리로 학교에 못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누구나 코로나에 걸릴 수도 있는, 아슬아슬 외줄 타기를 하는 듯한 불안한 일상이지만 어쨌건 오늘도 빵집의 굴뚝에선 맛있는 빵 굽는 달콤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확진되어 나를 포함해 4명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한 장본인으로 의심받는 필립도 격리가 끝나고 나와 같은 날 첫 출근을 했다. 오랜만에 새벽에 출근해 쉬는 동안 손이 굳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 나와 동갑내기 제빵팀 막내인 필립은 IT 쪽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지만 회사 내 정치와는 상관없이 자기가 의도한 만큼 정직한 결과를 낳는 제빵 일에 매료되어 새로 일을 배우는 친구다. 코로나 격리 해제를 기념해 일하는 모습을 서로 몰래 찍어줄 만큼 돈독해졌다.  

일하는 뒷모습을 본 일이 없기에 처음 사진을 받아보곤 참 낯설었다. '주방에서 나는 이런 모습이구나.'

    출근 첫날 셰프의 배려로 힘들 때면 밖에 나가 공기를 쐬고 오곤 했다. 아직 잔기침이 멎지 않아 피곤한 것도 사실이지만 쉬는 동안 손이 굳어 버렸으면 어쩌나, 실수하지 않으려 더 긴장했던 것 같다. 케이크를 매장에 진열하고 갖는 15분 동안의 휴식시간 동안 탈의실에 가득 쌓인 밀가루 포대에 발까지 올리고 최대한 거만한 자세로 쉬었다. 밀가루가 가득한 곳이라 잠깐만 앉아 있어도 온몸에 밀가루 범벅이지만 7시간 내내 서서 일하는 하루 일과 중 이 잠깐의 휴식시간이 갖는 의미는 크다. 엉덩이에 밀가루 자국이 남아도 이 달콤한 휴식시간을 마다할 순 없지.   

    다시 출근한 빵집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갔다. 크리스마스 연휴 직후부터 시작한 갈레뜨 판매는 1월 말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남 프랑스인 툴루즈는 프랑스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fleur d'orange액과 과일젤리를 가득 넣어 왕관 모양으로 만든 브리오슈인 couronne도 이 시기에 많이 먹는다. 이 브리오슈는 하루만 지나도 금세 건조해지기 때문에 전날 팔고 남은 브리오슈는 직원들의 맛있는 아침식사가 되기도 했다.    

12월은 부쉬 드 노엘, 1월은 갈레뜨, 2월엔 발렌타인데이, 4월엔 부활절까지 빵집 대목은 겨울 내내 끝나질 않는다.

    일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다 되어가니 나에게 맡겨지는 일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원래 제빵사였던 Hugo가 그의 바람대로 3월부터 제빵팀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결정된 이후 그의 노하우를 하나씩 배우게 된 까닭도 한 몫했다. 건축 관련 공부를 잠깐 했었다는 그답게 그가 만든 밀푀유는 견고하고 예뻤다. 이미 구운 파이 시트에 차곡차곡 크렘 파티시에를 얹는 일은 마치 집을 짓는 일과 비슷하다. 그에게서 하루 교육을 받고 그다음 날 혼자 해보았다. 곁눈질로 여태껏 봐온 것도 있고 해서 호기롭게 시작은 했으나 실수할까 조심조심하느라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다. 자르다 맨 끄트머리 밀푀유는 반절 동강이 나버렸지만 첫 시도치곤 나쁘지 않았던 거 같다. 기념 삼아 사진도 남겼다. 

    모든 외국인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불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로서는 케이크 위에 글씨를 쓰는 일이 정말 어렵다. 멋드려 지게 글을 쓰고 싶은데, 아직 철자도 익숙하지 않은지라 손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제과 CAP 시험에서는 심사위원이 맛을 보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케이크의 외양과 장식도 꽤 중요한데, 케이크는 정말 잘 만들어도 글씨가 너무 못생기면 감점 대상이라고 한다. 연습 연습 연습만이 살 길이다.  

왼쪽 사진이 직원이 쓴 것, 오른쪽이 내 연습의 흔적들. 손님이 내가 쓴 본인 이름을 보고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맘 뿐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간 학교. 말도 안 듣고 시끄러운 아기들이지만 오랜만에 보니 정말이지 반가웠다. 못 본 3주 사이에 키도 더 큰 것 같고 바쁜 크리스마스 동안 손도 빨라졌는지 실습도 노련하게 더 잘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대화를 나눈 한국 친구가 내 사진을 보고 많이 젊어진 것 같다는데, 이 십 대 학생들과 지내다 보니 아무래도 같이 철이 없어진 탓이 크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려 20년 만에 과학 쪽지 시험을 준비한다고 기차 안에서 연습문제를 풀고 있고 반장 선거에도 참여하고... 이 학생들과 하는 학교생활이 조금은 따라가기 어렵지만 활력이 되는 건 확실하다. 


    일상이다. 아프고 나니 일하고 먹고 자고 이야기 나누고, 학교에 가고 공부도 하는 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더라. 아직 게을러서 운동으로 복귀는 아직 시도 못했지만, 이번 주부터는 조금씩 몸을 움직여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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