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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Feb 07. 2022

골목식당 프랑스 버전

La meilleure boulangerie de France

    매일 밤이면 놓치지 않고 챙겨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tvN 같은 채널인 프랑스의 M6 채널에서 방영하는 La meilleure boulangerie de France라는 프로그램이다. 예선을 통해 프랑스 전역 13개 지역 대표 빵집을 선정해 시즌 끝무렵 지역 대표끼리 결선을 치르는 포맷으로 2013년부터 시작돼 햇수로 10년 차로 접어든 국민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링크 : https://www.6play.fr/la-meilleure-boulangerie-de-france-p_2944


    한국의 편의점만큼이나 많은 게 프랑스의 빵집인데, 그것도 내가 사는 지역을 대표하는 빵집을 소개하고 경쟁까지 하는 포맷이니 인기가 없을 수가 없다. 지역 대표를 선정하는 예선에서는 지역 특산품을 재료로 메뉴를 개발하는 게 중요한 관문이니, 제과를 공부하는 나로서는 프랑스 전역의 독특한 빵들을 찾아가지 않고도 TV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공부인 셈이다. 더불어 다른 빵집의 주방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방송을 통해 이 빵집의 주방에서는 이런 도구를 사용하고, 저 어프헝티는 이렇게 배우고 있구나, 하고 괜한 동종업계 종사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시즌 10회가 되면서 전국의 웬만한 빵집은 다 나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몇 대를 이어서 하는 역사 깊은 빵집도 있는 반면 하루에도 수십 개의 빵집이 새로 생기고 폐업하는 상황에 새로 생긴 빵집들에겐 이 프로그램이 가게를 알리는 좋은 홍보 수단이 되는 듯싶다. 우리 동네에 이곳은 맥주집인가 빵집인가 궁금은 했으나 한 번도 가보진 않았던 빵집이 TV에 나오는 걸 발견했다. '어? 나 저기 아는데?'라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이 빵집은 나의 예상대로 팔고 남은 빵으로 맥주를 만들고 맥주 효모로 빵을 만드는 특이한 콘셉트를 지닌 곳이었다. 백종원 같이 사람 좋아 보이지만 냉철한 심사위원인 MC들이 맛있다고 칭찬을 한 맥주 브리오쉬가 궁금해 그다음 날 찾아갔다.  


    우리나라에서 자고로 맛집으로 방송에 나온 다음날이면 가게 앞에 줄이 쭉 서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가게 앞이 조용한 게 조금은 낯설었다. 그리고 들어가 본 내부. 방송에 나온 그대로였다. 맥주를 파는 냉장고, 작은 빵 진열대, 방송에서 본 직원들까지. 방송 효과 덕분인지 진열대에 빵이 많이 빠졌고 직원들도 전화를 받느라 조금은 바빠 보였다. 궁금했던 밤 빵과 맥주 브리오쉬까지 9유로를 주고 사 왔다. '방송을 보고 왔어요 축하드립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으나 작은 쿠키를 덤으로 주는 서비스는 아쉽게도 없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가게에서 집까지 걸어서 10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인데, 퇴근 직후라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그 짧은 시간에 브리오쉬 3분의 1을 먹어버렸다. 맥주 효모를 사용해서 그런지 은근히 달짝한 맛이 제법 맛있었다. 집에 돌아와 빵을 반절로 나눠 그다음 날 내가 일하는 빵집 직원들과 나눠먹기 위해 싸 두었다. 밤 빵은 밤이 통째로 들어가 있는 밤 식빵을 상상했는데, 가루를 내어 넣었는지 밤 맛이 하나도 나지 않아 조금은 실망했지만 브리오쉬는 정말 만족했다. 다음날 직원들과 나눠 먹었는데, 직원들은 빵의 굽기 정도를 보아 경험치가 많은 제빵사가 만든 빵이라며 좋아했다. 역시 같은 빵이라도 관심 있는 분야에 따라 보고 맛보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방송에 나와도 한산한 빵집 앞. 그리고 그곳에서 사온 빵들. 먹는 것도 공부라고 한다지만 너무 많이 먹었나?

    제과인이라면 이 방송과 인연이 닿을 수밖에 없나 보다. 인턴쉽을 했던 크로와상 맛집 Cyprien 빵집도 개점 초기 이 프로그램에 나와서 덕을 톡톡히 봤다고 했다. 그리고 나의 첫 제과 선생님인 제인도 이 프로그램에 나왔었는데, 미국인답게 치즈케이크와 브라우니를 대표 케이크로 선보였다. 촬영 전날 가게 안을 열심히 쓸고 닦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방송 촬영 후반에 스트레스가 극도로 쌓여 눈물까지 쏟았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왼쪽의 여성 파티시에가 바로 나의 첫 제과 선생님인 미국인 제인이다! 사진으로 봐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프랑스에서 제과 제빵 공부를 하기 가장 좋은 이유는 TV에서도 라디오에서도 길거리에서도 누구나 빵과 케이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파티스리를 접하기 쉽다는 뜻일 것이다. 시장이 이렇게나 활성화되어 있으니 계속 발전하는 것은 당연지사. 프랑스에서 계속해서 제과 제빵 공부를 하다 보면 나도 저 프로그램에 나올 기회가 있지 않을까?라는 황당한 상상을 하게 되지만 정작 촬영 중에 긴장해서 불어를 하나도 못 알아듣고 돌처럼 굳어 있을 것만 같다. 상상만으로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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