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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Mar 21. 2022

주사와 함께한 지난날

케이크 굽는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엄마의 의미를 엄마를 잃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근원이었던 모성. 그 엄마의 사랑을 언제나 그렇듯 잃고 나서야 너무 늦게 깨달았다. 엄마와 함께했던 마지막 시간, 내 엄마의 생명이 조금씩 흐려질 무렵.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엄마가 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1년 전 엄마의 나라를 떠나 프랑스에 정착하며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산부인과에 예약을 한 것이었다. 아직 프랑스 내 국가보험도 없던 때였지만 난임시술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 일인지 특히 한국에 비해 느긋한 행정처리 때문에 무엇이든 오래 걸리는 프랑스인지라 뭐든 앞서서 준비해야 한다는 걸 알았기에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기초불어 수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의학용어들 때문에 의료진들과 의사소통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그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건 때를 알 수 없는 기다림이었다. 의사는 짧게는 8개월, 길게는 2년은 기다려야 순서가 온다고 했다. 특히 착상전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는 병원은 프랑스 내에 다섯 군데뿐이라 대기가 길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커질수록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난임시술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조차 알 수 없었던 불안한 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던 나를 붙잡은 건 pâtisserie, 제과였다. 달콤하고 예쁜 과자를 굽고, 케이크를 만드는 단순하지만 즐거운 그 행위 자체가 초조한 기다림의 순간을 초월하게 해 준 것이었다. 

 


        지금 직장에 견습생으로 취업함과 동시에 운명처럼 200km 떨어진 한 난임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2022년도 봄에 첫 과배란을 시작할 수 있다는 소식이었다. 또 다른 고민의 시작이었다. 일과 시술을 동시에 해낼 수 있을까? 제과 자격증을 취득할 때까지 시술을 미뤄야 할까? 흔히들 첫 시험관 시술에 성공하는 것은 로또와 같다고 한다. 만 42세까지만 지원되는 프랑스 건강보험의 난임 지원도 걸렸고, 한 번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한 달 한 달 나의 가임력을 점점 떨어진다는 사실. 그리고 1차 시술과 2차 시술 사이 3~4개월씩 걸리는 그 기다림이 결정적으로 일과 시술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이유였다.



        그리고 3월 초 드디어 과배란 주사를 시작했다. 오랜 기다림을 통해 시작한 시술이라 배 주사의 따끔한 고통보다는 설렘이 더 컸다. 문제는 하루 걸러 진행되는 피검사와 초음파였다. 낮 12시 이전에 검사 결과를 병원에 전달해야 돼서 모든 검사는 아침 일찍 해야 했다. 오전 내내 일을 하는 파티시에 일과상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루는 휴무날을 이용했고, 하루는 휴가를 사용했다. 검사 결과에 따라 그다음 검사 날짜가 정해지는 탓에 휴가 날짜를 급하게 변경해야 했고,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컸다. 아무리 연간 5주간의 휴가가 보장되는 프랑스라 하더라도 '노동자'보다는 '배우는 자'라는 느낌이 강한 견습생이 갑자기 휴가를 바꾸는 건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회사에 난임시술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한 채 등록한 불어 시험 날짜가 코로나 탓에 갑자기 변경되었다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호르몬 주사의 용량을 늘리면서 피곤함의 정도도 점점 커졌다. 비바람이 내리는 새벽에 일어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하면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듣기 일쑤였다. 부은 난소 때문에 아랫배가 당겨 무거운 것을 들기가 점점 어려웠고 일의 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일을 마치고 셰프가 조용히 불러 내가 요즘 일보다 다른 것에 신경 쓰는 것 같다는 말을 건넸다. 첫 해는 몸이 많이 힘드니 불어 공부도 좋지만 퇴근 후 오후에는 푹 쉬라며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 말에 얼마나 죄책감이 들던지. 일과 시술 둘 다 해내고 싶었는데, 호르몬의 위력이 이렇게 센지 누가 알았으랴. 많은 난임부부들이 직장에서 눈치를 보며 화장실에서 몰래 주사를 놓으면서까지 일과 시술 둘 다 병행한다. 일과 아이 모두 인생에 있어 우선순위를 둘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술이 길어지며 난임 휴직을 내거나 퇴사를 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시술은 지금이 아니면 더 어려워지는 시간 다툼이기도 하니까. 일을 놓지 못하는 경우나 일을 놓는 경우나 두 모두의 경우에 공감했다.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11일의 과배란 주사, 3번의 모니터 후, 채취 날이 정해졌다. 다행히 제과학교 체육 수업이 든 날이었다. 혹여 시술 전날이나 후면 수업을 어떻게 들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마음의 짐을 덜었다. 채취 당일. 병원이 차로 3시간 넘게 떨어져 새벽에 일어나 출발했다. 이런 경우 프랑스에서는 톨비를 포함해 거리에 비례해 교통비를 지원해준다. 비용 때문에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타고 멀리 고생하며 돌아가는 일은 막아주는 셈이다. 기다림이 어려워서 그렇지 이런 세세한 지원이 존중받는 느낌을 주는 곳이 프랑스이다. 


        채취를 마친 후 마취가 풀리며 저 아래에서 할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회복실에서 다시 병실로 돌아와 여러 담당자들을 만났다. 기대보다 좋은 결과는 아니었지만 2주 후 다시 과배란을 할지 이식을 할지 여부를 알려준다고 한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과배란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해변에 들렸다. 실망과 후련함, 걱정과 기대 여러 가지 감정이 몰아쳤다. 일과 임신 모두 같이 하는 게 무리일까. 파티시에 특수교사도 내 삶이고 엄마가 되고 싶은 것도 내 삶이다. 둘 다 놓치지 않고 싶은데, 둘 다 잘 해내고 싶은 건 욕심인 걸까.


        채취 다음 날 학교에 돌아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수업을 듣고 실습을 했다. 밀푀유를 만드는 실습이었는데 글리사쥬가 마음에 안 들어 실습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고 교수님께 다시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평소와 같으면 그냥 '다음에 제대로 하지 뭐!'라고 넘어갔을 텐데, 그날만큼은 왠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두 번의 글리사쥬를 입힌 아주아주 단 밀푀유를 완성했고, 노력이 가상했는지 반에서 1등을 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면 다시 출근을 한다. 거짓말로 둘러댄 불어 시험 결과는 어땠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해야 하나 고민이긴 하지만 돌아갈 일상이 있다는 건 좋은 일에 틀림없다. 

 

        - 이 순간에도 고민 많은 난임 예비 엄마들을 응원하며. 제가 만든 달콤한 케이크를 선물할 그날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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