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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Mar 07. 2022

Médecine du travail

일하는 환경에 대해 생각해보기

        지난주 목요일, 1시간 일찍 조퇴를 하고 médecine du travail를 방문했다. 불어사전을 찾아보니 촉탁의 라고 설명이 나오는데, 영어로는 Occupational medicine 즉, 노동전문 의료인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주치의가 따로 있는데도 회사에서 직접 항데뷰를 잡아주기까지 해서 의아해했더니 일하는 동안 5년마다 médecine du travail를 만나는 게 의무라고 한다. 툴루즈에 있는 에어버스와 같은 큰 대기업의 경우 촉탁의가 직장 내에 상주하여 의료상담을 해주지만, 빵집처럼 영세한 사업체에서는 이런 전문 에이전시를 통해 의료상담을 진행하는 것 같다. 1시간 일찍 나오게 되어 마무리 청소를 함께하지 못해 동료들에게 살짝 미안했지만 날씨 좋은 날 오전 11시의 조퇴는 무척이나 설레는 일이었다. 걸어서 20분 만에 도착한 오피스. 병원 같은 느낌일 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진짜 평범한 오피스 같은 분위기였다. 데스크에서 꽁보까시옹을 보여주고 신분증을 맡기고 건물에 들어갈 수 있는 카드를 받아 한 층 더 올라갔다. 그리고 만난 간호사. 촉탁의라고 해서 꼭 의사자격을 가질 필요는 없고 관련 교육을 이수한 의료인이면 누구나 가능한 것 같았다.


        간호사는 간단하게 내 개인정보를 확인하고, 주치의의 이름과 혹시 어렸을 때 어떤 백신을 맞았는지 기록이 있으면 보여달라고 했다. 한국은 2000년대 들어서야 전산화 작업이 되어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수기로 기록된 백신 기록 외에는 정보가 없어서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간호사는 파티시에 일과 관련해서는 파상풍 백신이 필수이니 다음번에 만날 때 이 백신을 맞았는지 여부를 꼭 알아오도록 당부했다.      

한국의 보험회사와 느낌이 비슷했던 médecine du travail 에이전시 

        그리고 이어진 무수한 질문들. 

1. 지금 일하는 것에는 얼마나 만족하는지 (0~10점)

2. 스트레스 정도는 얼마 정도 되는지 (0~10점)

3. 회사에서 작업복 특히 세큐리티 신발을 제공하는지 여부

4. 일하는 작업장 환기 시설은 잘 되어있는지

5. 마스크와 손 소독제는 제공받는지

6. 직장 내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7. 작업장 내 소음을 내는 도구는 어떤 게 있고 정도는 얼마나 심한지

8. 칼, 오븐 등 위험한 도구를 사용할 때 안전교육이나 안전 장비 등을 제공받는지

9. 무거운 것을 나를 때 수레 같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지

10. 작업장 내 조도는 괜찮은지 최근 들어 시력이 나빠지진 않았는지 

11. 청소 약품을 맨손으로 다루는지

12. 복용하고 있는 약물이 있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키와 몸무게, 혈압은 직접 측정하지는 않고 물어보고 답하기만 하고 시력만 직접 체크했다. 한국에서 매년 하던 건강검진과는 달리 정말 산업재해와 관련하여 노동청 조사를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의 건강검진은 병을 조기 발견하는 게 목적이라면 프랑스에서 촉탁의와의 상담은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회사에게 안전한 노동환경을 제공하도록 하는 걸 목적으로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자가 실용적이라서 좋았다면 후자는 산업재해 예방을 이런 식으로 접근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신선했달까?


          그리고 파티시에에게 흔히 발생할 수 있는 허리 디스크와 관련해서 무거운 것을 들을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었고, 폐쇄된 공간에서 밀가루 분진을 흡입해 천식이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조언도 받았다. 상담이 막바지에 이르러 회사 측에게 상담 내용이 알려지지 않고 비밀이 보장되니 궁금한 거나 어려운 점이 있으면 뭐든지 이야기하라고 했다. 견습생도 다른 일반직원들처럼 출산 관련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지, 만약 임신하게 되면 밀가루 포대와 같이 무거운 것을 나르는 일이나 화학약품 사용을 피할 수 있는지, 그리고 교사생활 때 서서 일하면서 생겼던 하지정맥류와 관련해서 물어보았다. 만약 임신을 하게 되면 3개월 후에 직장에 알려야 하며 촉탁의와 상담을 통해 임산부가 피해야 할 작업 내역(화학약품 사용 금지, 추가 야간 근무 금지 등등)을 만들어 직장에 보내면 회사는 이 사항들을 지켜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프랑스의 일반 주치의가 평소 나의 건강을 챙겨준다면 촉탁의는 노동자로서의 나의 건강을 챙겨주는 것 느낌이다.

허리디스크, 화상, 타박상 등에 관해 나온 팸플릿. 허리 자세를 보며 많이 반성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5년 후에나 다시 만날 médecine du travail. 잘은 모르겠지만 한국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다 자해하던 학생에게 손톱으로 긁힐 때마다 연고 바르러 찾아갔던 보건 선생님이 생각나던 하루였다. 어디 매 맞는 선생님이라고 하소연할 곳 없던 게 특수교사의 서러움이라면 서러움이랄까. 찾아갈 때마다 따뜻하게 손 꼭 잡아주던 우리 보건 선생님은 잘 지내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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