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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Mar 02. 2022

엄마 클레유

강해질 수밖에 없는 이름, 엄마

        내가 일하는 Saint Aubin 제과 파트에는 총 3명의 어프헝티가 있다. 지리학 전공의 똑 부러진 30살 로렌, 이름 탓에 종종 프랑스 전통 음식인 키쉬 로렌을 따 키쉬라는 얄궂은 별명으로 불린다. 파리 출신으로 우리 회사 내에서 가장 또박 또박하게 정직한 불어를 구사해서 궁금한 걸 물어보면 가장 조리 있게 잘 설명해주는 친구이다. 작년에 CAP를 취득하고 지금은 MC 과정을 밟고 있는데, 나에겐 1년 직속 선배인 셈이다. 초콜라티에 CAP를 공부하고 싶어 올해 여름을 끝으로 다른 곳으로 이직할 예정이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의 어프헝티는 Cleuza, 줄여서 클레유라고 불리는데, 곧 32살이 되는 워킹맘이다. 한 업장의 어프헝티 모두 여자이자 더군다나 모두 30대라니, 프랑스 전역에서 이런 경우는 우리가 유일할 것이다.

    

        클레유와 나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클레유는 포르투갈의 과거 아프리카 식민지 국가 출신으로 19살 때 포르투갈로 건너갔다. 그래서 그녀의 모국어는 포르투갈어인데, 불어 때문에 고생하는 나와는 달리 프랑스에 산지 오래되어 그런지 불어로 의사소통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우리 둘 다 프랑스인 배우자가 있다는 것. 어쩌다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아시아에서 프랑스의 그것도 툴루즈에서 파티스리를 공부하고 있는 건지, 혹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인생사에 마주 보고 웃음 짓곤 한다. 


        클레유는 늘 일을 하는 삶을 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24살 탄자니아에서 첫 직장생활을 했던 나와는 달리 그녀는 19살에 일을 찾아 포르투갈로 건너가 청소, 주방일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때 그녀에겐 생계를 책임져야 할 어린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스본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을 하다 프랑스인 남편을 만났고, 3년 전 결혼해 툴루즈로 이주했다고 한다. Saint Aubin에서는 샌드위치를 만드는 traiter로 일을 시작했고, 코로나 봉쇄 시기 둘째 아이가 생겨 일을 쉬었다 작년 9월부터 파티스리 공부를 시작했다. 계속 샌드위치 만드는 일을 해도 괜찮았겠지만, 프랑스에서 사는 데 생각보다 학위를 요구하는 곳이 많고 나중에 시어머니와 시골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며 케이크를 팔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단다. 아이가 9개월 때부터 일을 다시 시작했으니, 그녀를 처음 만난 9월에도 모유수유 중이라 쉬는 시간마다 젖가슴을 어루만지며 아파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동갑내기이지만 일을 한 경험치나 두 아이의 엄마라는 점에서 언니 같은 든든함이 있다. 일의 생리를 잘 아는 것도 그녀를 언니처럼 느끼게 하는 면인데, 이제껏 가르치는 일을 하며 줄곧 책상에 앉아 일을 하던 나로서는 오랜 육체노동으로 단련된 그녀의 일머리를 따라갈 재간이 없다. 그러나 누구보다 절실하게 일을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그녀의 성취욕이 때로는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가끔 셰프가 우리 둘을 경쟁을 붙여 더 예쁘게 잘 만든 사람의 케이크를 특별 주문용으로 보내겠다고 한 날이었다. 조금의 차이로 내 것이 조금 더 예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나머지 일하는 시간 내내 간섭 아닌 간섭에 괜한 일로 트집까지 잡는 게 마치 중고등학교 때 라이벌 관계였던 친구들이 생각나게 만들었다. 불어를 잘 이해 못 해 실수라도 할까 한껏 긴장해서 일하는 나로서는 유일한 동기에게 솔직히 배신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나 또한 CAP 1년 과정인 그녀가 학교나 업장에서 진도를 더 많이 나가 2년 과정인 나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케이크를 만드는 걸 볼 때면 질투가 날 때도 있다. 엄마라 그런지 잔소리가 심해 다른 선배한테도 조리복 좀 빨아 입으라든지, 한국 회사 문화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검지 손가락을 치켜세워 양 옆으로 흔들며 '노노노노노 No!' 라고 말하는 게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 너무 좋은 친구이지만 그녀가 학교에 가는 주간에는 잔소리를 덜 들어서 편하긴 하다. 


        하지만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건 아무리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이라는 프랑스에서도 쉽지만은 않은 일인 듯하다. 이제 갓 돌 지난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전염돼 잔병치레가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밤늦게까지 아이를 돌보다 출근을 못하거나 몇 십분 늦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면 늦은 시간만큼 쉬는 시간도 없이 악착같이 일을 하는 모습에 몇 년의 내 모습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날 그녀는 일을 마친 후 탈의실에서 무너지듯 앉아 눈물을 글썽였다. 밤에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라는 둥, 왜 보모를 구하지 않느냐는 둥 부 셰프의 선을 넘는 간섭이 힘들었을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새벽에 출근하는 파티시에 일이 과연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인지, 무거운 것을 나르는 일이 많은 이 일이 임신 중에도 괜찮은 일일까 의심이 든다. 셰프는 왜 다 남자들일까, 현직에 있는 30~40대 여성 파티시에를 본 경우가 별로 없는 게 이 의심을 더 부추긴다. 

        

        3개월 후, 클레유의 CAP 시험이 있다. 이 시험에 통과하면 그녀는 정식 파티시에가 되는 것이니, 어쩜 내가 아는 최초의 워킹맘 파티시에일지도 모르겠다. 근성 좋고 악바리에 할 말은 다 하고 사는 클레유. 얄미울 때가 많지만 그만큼 실력이 좋아 성장이 기대되는 부러운 친구. 나도 엄마가 된다면 그녀처럼 일을 병행하며 잘 해낼 수 있을까? 

퇴근길의 클레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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