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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Jun 17. 2022

초콜릿의 매력에 퐁당! 쇼콜라티에

BTM 시험을 보러 오라고요?

      열흘 전, 학교로부터 편지 한 통이 왔다. BTM 쇼콜라티에와 파티시에 시험을 보러 오라는 안내장이었다. 처음에 이 편지를 읽었을 때 CAP 과정도 채 끝내지 않은 1학년 학생한테 경력 5년 이상의 학생들이 보는 BTM 자격시험을 보러 오라니, 학교에서 실수로 보낸 거라 생각했다. 혹시 나 말고 다른 학생들도 이 편지를 받았을까 싶어 우리 반 단톡방에 질문을 올렸다. 나 말고도 편지를 받은 학생들이 세명이나 있었다. 학생들 말에 따르면 이 편지를 받은 학생은 반드시 시험을 보러 가야 하는데, 시험 보조 도우미인 Commis로 참여하는 거란다. commis(꼬미)는 수험생의 apprenti로 수험생의 시험을 보조하기도 하지만 셰프로서의 자질인 협동심, 리더십을 평가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임용시험 면접 때 수업시연을 하며 가상의 학생이나 특수교육지도사가 있다고 가정하에 연극을 하는 게 아니라 수업시연장에 진짜 특수교육지도사와 학생을 데려다 두고 수업을 해보라고 하는 거나 다름없는 셈이다. 시험에 진지한 프랑스의 다운 장치라고 생각했다.


      이 편지를 받은 게 다행이었던 게, 수업에 자주 빠지거나 실기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은 결국 편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지난 1년간 학교생활을 어떻게든 잘 버텨냈구나 하고 안심이 되었다. 시험이 어떻게 치러지는지 미리 그 분위기를  파악할 수도 있고 특히 초콜릿을 만드는 쇼콜라티에의 작업을 옆에서 바로 지켜볼 수 있다니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실기시험 동안 Commis도 또한 심사위원이나 수험생에게 평가를 받는다고 하니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솔직한 마음으로 내 부족한 불어 때문에 말을 잘 못 알아들어 5년 넘게 준비한 시험을 망치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조리복을 입고 시험장에 오라는 통지문.

       그런데 이상했다. 나만 하루 더 있고, 나머지 학생들은 편지를 못 받아서 참여를 못하거나 최대 4일만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월요일. 꼬미로서 처음 시험에 참여하는 거라 아침부터 긴장됐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시험장으로 갔다. 시험장 밖 복도에서 서성이니 심사위원인듯한 나이 지긋한 셰프가 나를 보고 손짓했다. '자, 오늘은 건강상의 이유로 연장 시험을 보는 한 명의 수험생만 시험을 봅니다. 그래서 꼬미도 1명이지요.' 당황스러웠다. 이 넓은 시험장에서 한 명만 시험을 보다니. 그런데 심사위원 둘에 학교 교수님까지 3명이 수험생과 나만 지켜보는 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쩐담? 혹시나 말을 못 알아들어 실수를 할까 봐 노트 한 권과 펜, 그리고 물 한 통을 들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만난 수험번호 12번 Romain 로망. 키가 무척 크고 웃을 때마다 윙크를 날리는 선한 얼굴의 학생이었다. 긴장한 나와는 달리 악수를 건네는 단단한 손에서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자신감이 뿜어져 나왔다.   


      보아하니 시험장에는 이미 다른 수험생들이 오전 중에 시험에 쓰일 모든 물품을 정리해둔 채 귀가한 상태였다. 남들보다 먼저 시험을 시작한 로망과 짧게 인사를 나누고 시험의 주제와 3일 동안 이어질 작업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산딸기 맛의 퐁당 fondant, 설탕 결정을 입힌 pate d'amande 사탕, 딸기잼, 4가지 맛의 초콜릿(사과, 알코올, 라임, 아몬드맛. 한 가지 맛에 25개 이상), 초콜릿을 전시할 전시대까지 초콜릿으로 만들어야 하고, 초콜릿을 이용한 창작조형물 1개와 창작조형물에서 모티브를 딴 판매 가능한 크기의 작은 초콜릿 조형물 3개,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초콜릿을 만들고 수험생 한 명당 한 테이블을 생산한 멋지게 장식해서 선보여야 한다. 오전 7시에 시작해 오후 7시에 끝나고 점심시간 30분이 전부, 이틀 동안 이루어지는 꽤나 긴 시험이다. 시간 안배와 체력관리, 집중력 그리고 commis와 협력해서 일하는 모습까지 보여야 하니 그리고 위생까지! 신경 쓸게 한두 가지가 아닌 어려운 시험임이 틀림없다. 주제만 듣고도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더욱이 로망이 하고 싶은 창작조형물은 불상! 초콜릿으로 불상을 만든다고? 이게 가능해?

 

      누군가 그랬다. 초콜릿은 아주 세심한 손길로 다루어야 해서 아주 예민한 사람만이 쇼콜라티에가 될 수 있다고....  예민한 사람의 정석이라는 쇼콜라티에와 허둥지둥 실수 투성이인 내가 3일 동안 잘 지낼 수 있을까...?



그날 밤 나는 로망의 초콜릿 불상을 떨어뜨리는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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