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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Jun 28. 2022

Examen Blanc

BTM pâtissier

        실망.


        BTM 파티시에 연습 시험(Examen Blanc)에 참여한 후 CAP 파티시에 1년 차 commis들이 솔직히 내뱉은 소감이었다. 콜라티에 시험에서 응시생들의 수준 높은 실력에 너무나도 감동한 이유에서 일까, 3일 연속 이어진 시험 보조로 체력적으로 힘들어서일까, BTM 파티시에 응시생들의 포장되지 않은 그대로의 실력을 보고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Examen Blanc은 본시험 주제 그대로 예행연습을 하는 연습 시험이다. CAP 레벨에서는 시험 당일에서야 주제가 주어지는 반면에 BTM 시험에서는 주제를 미리 알고서 준비할 시간을 2주 이상 갖는다. 준비할 시간이 있는 만큼 완성도 있는 작품을 생산해내야 하는 부담도 있는 셈이다. 올해 BTM 파티시에 자격시험 주제는 이틀에 걸쳐 가면무도회라는 행사에 걸맞은 피에스 몽떼 케이크, 미니 키쉬 8개, 과일잼 4병, 오렌지 마멀레이드가 들어간 Pain d'épices, 초콜릿으로 장식한 로얄 케이크 2개,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무스 쁘띠 가또 20개,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을 만들어야 한다. BTM은 파티시에의 역할을 케이크를 만드는 것으로 한정 짓지 않고 초콜릿을 다루는 쇼콜라티에,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글라시에, 샌드위치, 키쉬, 피자 등을 만드는 traiter 분야까지 다방면으로 다재다능한 파티시에로 그 역할을 확장한다. 실제 현장에서도 파티시에는 이 모든 일을 해내고 있으니 시험에서도 이를 반영하여 주제가 주어진 것일 테다. 이 모든 것을 정해진 시간 안에 하려면 계획성 있는 시간 분배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험이 치러지는 이틀 동안 Commis가 함께 하는 것은 시험 첫날뿐이지만, Commis 없이 이 많은 양을 생산해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특히 시험과제 중 Pain d'épices는 응시생이 Commis에게 어떻게 만드는지를 가르치는 과정을 감독관이 지켜보는 앞에서 선보여야 한다. 응시생은 어떻게 하는지 설명하고 지시만 할 뿐, 응시생의 지시에 따라 Commis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어야 한다. 하나의 수업시연인 셈이다. 미래의 셰프로서 어떻게 후배들을 가르치고 양성하는지도 평가한다는 말이다. 정말이지 대충 보는 시험이 없는 프랑스이다.        

베누아의 시간분배 계획표와 뺑데피스 레시피

        함께할 응시생은 주머니에서 번호표를 뽑는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나와 함께할 후보는 Benoit 베누아. 서양인 치고 얼굴이 크고 통통한 체격이 꼭 만화에 나오는 꼬마 요리사 같은 친구이다. 런던에서 오래 살았다는 베누아는 Commis와의 의사소통 점수를 많이 받고 싶었는지 나와 영어로 대화하기를 요구했다. 유학생 commis와 함께하는 건 어쩌면 불리할 수 있는 조건인데 역으로 이용해 좋은 점수를 따는 것으로 만회하고 싶은 마음을 백번 이해했기에 동의했다. 영어를 사용하는 그의 색다른 모습에 교수님들도 깜짝 놀란 듯했다. 나는 이런 식으로 주목받는 게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그가 주도해야 하는 그의 시험이기에 기꺼이 따랐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가 왜 영어를 사용해서까지 돋보이고 싶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예비 시험이라 할지라도 너무나도 정신없는 작업 테이블은 둘째 치고, 미리 계량해 놓은 밀가루, 계란, 설탕, 우유, 크림 같은 재료들 모두 비닐봉지에 담아두었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단 이틀의 시험 때문에 플라스틱 통을 사는 게 돈이 아까웠을 수도 있는데, 문제는 액체류를 담은 비닐봉지에서 조금씩 액체가 새어 나와 비위생적이었고, 비닐에 적은 글씨는 다 번져 알아보기 힘들었다. 꿀 같은 끈적한 재료조차 비닐에 담아두었으니 들러붙어 결국에는 원래 레시피보다 양이 적게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딱 한 가지 장점은 설거지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이었는데, 버려지는 상당한 양의 비닐봉지 쓰레기를 생각하면 과연 심사위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불 보듯 뻔했다. 교수님들도 당연히 이 문제를 지적했다. 재료가 초콜릿에서 시작해 초콜릿으로 끝나는 쇼콜라티에 시험과 달리 키쉬에 사용하는 양파부터 뺑데피스에 들어가는 향신료까지 재료도 도구도 너무나 다양한 파티시에 시험의 복잡성도 이해한다고 쳐도,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더럽혀진 그의 앞치마와 모자는 그가 평소에 어떻게 일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치명적인 실수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는데, 잼 뚜껑을 잠그지 않은 채 뒤집어서 잼이 다 흘러내리거나 베이킹파우더를 빼먹어 빵이 아니라 떡이 된 사연까지, 어떻게 만드는지 그 과정을 목격했기에 그가 만든 건 웬만하면 맛보고 싶지 않은 와중에도 그나마 그에게 정이 갔던 건 이 상황에서도 스트레스 하나 없이 해맑게 웃는 느긋한 성격이었다.

베누아의 작품들

        많은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이런 상황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건 응시생들의 평소 태도였다. 앞 테이블, 옆 테이블에서 commis들에게 빨리빨리 하라고 소리 지르는 응시생들의 아우성 속에 몇몇 commis들은 사방으로 튀는 잼에 화상을 입기도 하고 칼에 베이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경력 5년 차, 나이는 어리지만 엄연히 중간 관리자로서 일하는 응시생들이 제과점에서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일곱 시간의 연습 시험이 끝난 후 commis들 모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험장을 나왔다. 'BTM 수준이 이 정도라니 실망이야!' 몇몇 commis들은 왜 우리가 학교에서까지 노예처럼 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을 했다. 나도 녹초가 되어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열흘 후, 본시험이 내일로 다가왔다. 베누아에게서 오늘 일찍 자고 좋은 컨디션으로 내일 보자고 문자가 왔다. 비닐봉지는 사용하지 말아야 할 텐데... 휴, 조금은 달라져 있을까?

시간표에 딱 하고 나와있는 Commis 스케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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