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증후군 고위험군...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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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4명의 아이들 중 나와 비슷한 수치를 가진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 중에 1명의 다운증후군 아이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 처음 이 숫자를 들었을 땐 걱정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12주에 시행한 정밀초음파에서 측정한 태아 목투명대, 나의 나이와 몸무게, 그리고 두 가지 호르몬 수치를 적용해 나온 선별검사 수치였다. 참고로 프랑스에서는 1차 기형아 선별검사를 통해 1:50 이하일 경우 융모막 검사나 양수검사를, 1:51에서 1:1000 사이는 우선 DPNI (Le dépistage prénatal non invasif; 우리나라로 치면 NIPT 검사)을 실시한 후 여기서 고위험군이 나올 경우 확진검사인 양수검사를 시행한다. 물론 선별검사도 확진검사도 부모의 선택이기는 하나, 힘든 시험관을 하면서 착상전유전자검사인 DPI(Diagnostic Pré-Implantatoire; 우리나라의 PGT) 관문을 뚫고 어렵게 가진 아이인지라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우선 DPNI 검사를 받아보기로 결정했다.
그간의 타임라인을 정리해 보면...
3월 22일 12주 정밀초음파, trisomie 21 선별을 위한 혈액채취
3월 28일 주치의 면담. 다운증후군 선별검사 결과 통보 1:845
4월 3일 유전학자 면담. DPNI 확장 검사 결정
4월 5일 DPNI 검사를 위한 혈액채취
그리고 2주가 지난 후, 유전학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내 혈액 속에 태반 DNA가 부족해 결과가 확실치는 않지만 18번 에드워드 증후군 고위험군인 것 같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 일단 검사 신뢰도가 떨어지기에 재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4월 19일 재검사를 위한 혈액채취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
"21번 염색체가 3개인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으로 나왔습니다." 이날은 퇴근 후, 혼자서 영화 미나리를 보러 간 날이었다. 낮 12시 30분 아무도 없는 작은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며 눈물을 쏟았다. 주인공들이 겪는 역경에 마음 아파서라기보다 윤여정이 분한 할머니가 미국으로 오며 딸자식을 위해 바리바리 짐을 싸 온 모습을 보며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엄마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나의 엄마도 누군가의 엄마도 다 이리 마음고생하며 힘들게 아이를 갖고, 키웠겠구나...
DPNI를 권유한 유전학자는 이 결과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1차 결과에서는 18번만 문제가 있다더니, 2차에서는 1차에서는 없었던 21번 염색체 문제가 있다고 하니 말이다. 더욱이 정밀초음파에서는 아무런 이상소견이 없었기에 확진검사인 양수검사를 제안했다. 유산의 위험이 따르는 양수검사만큼은 피하고 싶었지만, 매일 불안해하느니 확실히 하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양수검사를 기다리며 퇴근 후 몇 번의 보충수업을 가졌다. 지난번 브리오쉬에 이어 크로와상과 pâte feuilletée 만드는 연습을 했다. 시험이 고작 2주 정도 남은지라 어쩌면 벼락치기라고 해야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왠지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아서 그리고 양수검사에 대한 두려움을 머릿속에서 지우기 위해 더 일에 매진했던 것 같다.
그리고 5월 2일 양수검사를 받았다. 대기실에 모인 우울한 표정의 산모들. 배에 발리는 차가운 소독약의 느낌, 두둑하고 뚫리는 바늘 소리, 바늘을 피해 저 멀리 달아나는 초음파 속 아가의 모습. 생각보다 빨랐지만 고통은 심했다. 저혈압과 빈혈 증세까지 맞물려 생기는 바람에 며칠 또 병가를 내게 되었다. 일보다 중요한 건 아이와 나의 건강을 지키는 거란 생각에서였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며, 쌓인 할거리는 정말 많았지만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다운증후군에 특화된 DPNI 검사의 정확도는 99.8%라는 수치에 마음 걸려하며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정보를 찾아보러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졌다.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지만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운천사 아이를 낳게 된다면? 남편은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만약 양수검사 결과 다운증후군 확진이 나온다면 뱃속에서 활발히 움직이는 아이를 잃는 선택은 죽어도 못할 것 같았다. 특수학교에서 만난 다운증후군 학생들은 똘똘했고, 사회성이 좋았고 취업할 때도 예후가 좋았다. 하지만 장애아를 둔 부모님들의 어려움을 잘 알기에 감히 같은 길을 묵묵히 걷겠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배아 이식 후 임신사실을 확인하기까지의 기다림보다도 양수검사 후 3일간의 기다림이 더 힘들었다...
그리고 5월 5일 한국은 어린이날. 5월 8일 월요일도 공휴일인지라 혹시 더 기다리다 이번 주말까지 소식을 못 듣고 불안해할까 봐 용기를 내어 유전학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새 휴가를 떠났다는 비서의 말에 조금 화가 났다. 몇 시간 후, 그의 동료에게 연락이 닿았다. 그리고..
"Le résultat de l' amniocentèse est rassurant"
"태아의 13, 18, 21번 그리고 성염색체 모두 정상입니다."
전체 염색체 소견은 아직 2주를 더 기다려야 하지만, 3월 말부터 오늘까지 나를 괴롭혔던 기형아선별검사의 결과는 faux positif... 위양성이었다. 엄마가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 아이도 시험을 통과했구나. 태교는커녕 걱정 때문에 스트레스만 잔뜩 줘서 미안하고 또 고마운 마음뿐이다.
DPNI, 즉 니프티 NIPT 검사는 시험관으로 2개 이상의 배아를 이식해 하나 이상의 배아만 착상된 경우, 크녹산주사나 아스피린 같은 항응고제를 복용했을 경우 그리고 태반에만 이상이 있고 태아는 이상이 없는 모자이시즘일 경우 위양성으로 나올 수 있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도 있으니 확진검사가 아닌 선별검사 때문에 그 누구도 나처럼 마음 졸여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초음파를 통해 성별을 알았어도 걱정 탓에 주변에 알리지 못했는데, 양수검사로 아이의 성별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오늘부로 18주가 된 우리 아가는 아들이다!!!
엄마가 된다는 것, 어느 시험을 준비하고 치르는 것보다 더 힘든 여정인 것 같다.
부족한 엄마를 믿고 강하게 버텨준 아가야, 고마워!